요즘은 불교계의 여러 학회 소식 등이 하나로 모아져 안내가 온다. 학계나 현장의 지식인들의 다양한 시각과 통찰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정보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는 단순히 지식의 공유뿐만 아니라 지식 간의 융복합도 쉽게 일어날 상황이 되었고, 단위 시간 당의 정보 소통량의 급격한 증가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초월하여 진행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불교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와 같은 문외한도 굳이 현장에 가지 않아도 요즘 불교를 연구하는 이들의 주제나 관심사가 무엇인지 흐름 정도는 알 수 있고, 불교 관련한 여러 지원 사업의 결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하여 보다 활발해진 불교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활발한 불교계 여러 학자들의 발표 내용은 대부분 학문적으로나 지식으로써 매우 흥미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종교로서의 불교에 얼마나 도움 되는 것인지는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물론 모든 종교에 있어서 교리, 체제, 역사 등이 학문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불교와 종교학으로서의 불교연구가 동일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계나 사회의 자원과 노력이 불교와 심지어 구조화된 지식 체계를 철저히 부정하는 선종에 대해서마저도 끊임없이 지식이 진행된다.

종교가 활성화되려면 신앙이 기반이 되어야 함을 누구나 공감한다. 본인이 재가신도일 뿐, 불교학자가 아니기에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있으나, 지금처럼 교계의 자원과 노력이 구체적 성과로 나타나기 쉬운 학문적 논의나 지식체제 강화에 치우치는 모습은 데카르트적 이성 회복이 출발점이 된 근대사회의 한 단면이자 생산성과 성과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모습을 반영한다. 불교는 종교다. 또 종교는 지혜에 대한 도그마로 이루어져 있지, 지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물론 지식이 보다 풍부한 이해를 도울지는 몰라도 불교문화를 거론하면서 불교와 서양 철학의 비교, 옛날 누구의 재발견, 무슨 학파나 입장에 대한 연구 등과 같은 유형의 넘쳐나는 학술 연구가 삶의 현장에서 추구돼야 할 불교는 아니다.

불교가 사람들의 욕망에 기반한 이기적이고 허망한 가치 추구로부터 바람직한 삶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새로 태어나도록 설해진 말씀이라면, 이고득락의 삶의 변화를 위해 쉽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부처님 말씀에 더해서 새롭게 더 알아야 할 지식이나 필요한 내용이 무엇일까. 유행하는 많은 학술적 논의와 토론과 행사보다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부처님 말씀을 어떻게 자신의 삶으로 체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지식과 자본은 인간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와 문화를 떠나 변치 않는 삶의 본질을 설파한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할 때이다. 근대사회의 가치는 결코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영성의 구족함을 지닌 인간의 충만한 삶을 약속하지 못한다. 진정한 불교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교계의 자원과 노력을 앎의 불교로부터 삶의 불교로 균형 있게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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