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없는 남북관계
신뢰가 이익, 깨닫게 해야
‘죄수의 딜레마’ 벗어날 수 있어

 

변화를 본질로 하는 이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모순되거나 겉보기로는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없는 패러독스(역설)가 수없이 존재한다. 8만사천의 법을 설하신 부처님이 “나는 법을 설한 적이 없다”고 하신 법문도 패러독스다. 여기서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패러독스를 소개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은 패러독스다. 실제로 임진왜란은 당시 조선이 전쟁에 전혀 대비하지 않아 속절없이 당한 침략이다. 유성룡이 징비록(懲毖錄)을 쓰고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겨 후세를 경계했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임진왜란의 교훈을 외면하고 구한말까지 300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비운을 맞았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패러독스 중의 압권은 평화를 전략으로 사용하는 행위다. 약 3,000년 전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가 싸운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은 10년 동안 결판이 나지 않았던 전쟁을 오디세우스의 트로이목마 전략으로 이겼다. 그리스군은 그리스병사들을 숨긴 거대한 목마를 해안에 남겨 놓고 배를 타고 그리스로 돌아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트로이 사람들은 평화가 온 것으로 믿고 목마를 전리품으로 여겨 성안으로 끌어다 놓았다. 그리고 온 주민이 전쟁이 끝난 해방감에 도취하여 밤새도록 축제를 벌이고 만취되어 새벽에야 깊은 잠에 빠졌다. 숨어있던 그리스병사들은 목마에서 나와 성문을 열고 바다에서 돌아온 그리스 군대를 불러들여 트로이를 초토화시켰던 것이다.

대결 중인 두 국가가 모두 평화를 원하는데도 전쟁을 피하지 못하는 패러독스도 있다. 게임이론에서는 이를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 공범인 두 범인이 잡혀 심문을 받게 될 때 둘 다 범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 그런데 검사가 두 범인을 분리심문하면서 자백하는 자에게는 보상을 주고 혼자 자백 안하면 엄청난 가중처벌을 받는다고 하면 범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백한다고 한다. 공범자가 신의를 지켜 자백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들이 전쟁을 준비하지 않고 협력하면 함께 이득을 볼 것인데 서로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배신해서 손해를 보고 전쟁을 준비하게 되는 원리와 같다.

그런데 게임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경우 이러한 역설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배신할 때마다 예외 없이 벌을 주고 협조하면 보상을 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게임이 계속되면 행위자들은 배신하지 않고 신뢰를 지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법칙을 깨닫게 되어 자발적으로 협조게임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보살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인과율을 깨닫게 해주어 바른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근혜대통령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 상태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한 남북한 관계를 협조게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본다. 남북대화가 시작된 초기부터 이런 원칙을 꾸준히 유지했다면 남북관계는 누적적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원칙을 확고히 지켜 북한이 신뢰를 지키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빨리 깨닫게 되어 남북한 관계가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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