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변덕스런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곡우가 지났습니다. 곡우는 청명과 입하 사이의 절기로서 태양 황경이 30°에 머무른다고 합니다. 이 무렵엔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깊은 산을 찾아 곡우물을 먹으러 다녔습니다.

곡우물은 주로 산다래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면 흘러 나옵니다. 이 물을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해 약수로 먹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병자들이 곡우물을 많이 찾았습니다. 곡우물을 먹기 위해서는 곡우 전 나무에 미리 상처를 내고 통을 달아두어 여러 날 동안 수액을 받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깊은 겨울을 잘 견뎌 낸 나무일수록 신선하고도 많은 양의 물을 배출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나무들이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과묵한 나무들이 겨울을 아무 탈 없이 이겨냅니다. 과묵한 나무란 다른 뜻이 아닙니다. 세찬 눈바람이 불어도 쉽게 요동치지 않고 저 깊은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자연과 한 몸이 되어 묵묵히 서 있는 그 자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화려한 꽃을 만개하는 일도 없거니와 가지가지마다 열매를 맺어 가지를 부러뜨리는 일 또한 없습니다. 그저 잎이 피고 질 뿐 요란을 떨지 않습니다. 이러한 과묵한 나무들이 실제로 숲을 지키고 침묵의 조화를 이룹니다. 숲의 상징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실상 나무의 과묵함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도 이와 관련 침묵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는 대목이 나옵니다.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비구들은 공양을 끝낸 뒤 식당에 모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화제는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무슨 이야기 끝에 정치 얘기가 나오자 이어서 전쟁에 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또 누군가가 재물에 관한 얘기를 하자 이번에는 도둑에 관한 얘기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렇게 계속된 화제는 서너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식당 건너편에 있는 나무 아래서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의 화제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음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곁으로 갔습니다.

“지금 그대들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나누고 있는가?”

비구들은 지금까지 했던 얘기의 대강을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조용히 타일렀습니다.

“수행자는 그런 일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해도 바른 이치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반을 향하는 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은 언제나 진리를 깨닫고 열반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는 법담(法談)만을 나누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차라리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다.”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잡아함경> 16권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처럼 사람들은 둘 셋 또는 서너 명이 모이면 이런 저런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눕니다. 비단 수행자 뿐 아니라 세속의 일반사람들도 이런 저런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고 또 일상적인 삶의 지혜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화가 말 그대로 잡담이 된다면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잡담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빈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럴 바에야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낫다는 게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침묵은 과묵한 나무처럼 큰 힘을 지닐 수 있는 근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침묵을 ‘성스러운’이란 수식어를 붙여 때로는 침묵이 얼마나 소중한 처신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처럼 ‘침묵은 금’이라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릴 때나 진실을 밝혀낼 때 침묵이 효과를 배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기치 않은 말로 오히려 시시비비 논쟁이 더 불거지고 걷잡을 수 없는 악화일로의 상황을 부르는 경우를 여러분은 적지 않게 경험했을 것입니다.

불가에 ‘묵빈대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해치고 악의적인 말로 음해하는 세력에 대해 침묵으로 대처한다는 말입니다. 살기가 담겨 있는 말을 말로써 대응하면 물리력이 동원되고 급기야 감정이 폭발하게 되므로 이를 삼가는 방법으로 침묵이 유용하다는 판단에서 나왔습니다. 실제로 묵빈대처는 항상 승리했고 진실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온갖 망령된 말, 거짓말, 이간질, 음해, 협박 등 각종 언어폭력에도 승가에서는 묵빈대처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양 나대는 사람은 스스로 품격을 잃게 됩니다. 또한 어느 시비에 한 쪽을 편들었다가 호된 곤욕을 치르는 일도 자주 목도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