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의 정치 참여 문제가 논란으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기독교의 지도급 인사들이 직접 정치계에 투신하여 정치 활동을 하는가 하면, 기독교 단체들도 공공연하게 정치적 입장을 밝히면서 정치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독교계의 정치적 관심은 아마도 현재 유력한 대권 주자 한 분이 자신의 신앙을 공공 영역에서도 실천하겠다고 공언하는 기독교 장로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어떤 것이어야 바람직한가 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숙제입니다. 특히 중세를 통해 종교에 의한 신권 정치를 겪어보았던 서구인들은,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숙고를 거듭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종교가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될 때 어떤 재앙이 초래하는지를 절감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구인들은 독단과 독선적 교리에 의거한 종교가 정치 권력이 될 때 초래하는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 근대 이후 정교 분리의 원칙을 수립하고 헌법으로 국교를 금지하였습니다. 종교와 정치는 각자 담당하는 역할이 다르므로 분리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정교 분리의 원칙은 특히 현대에 들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다종교 사회로 변모하면서부터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종교가 병존하는 사회에서 특정 종교가 정치 권력에 개입하게 되면 반드시 심각한 사회 분열과 갈등이 초래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 국가에서 정교 분리 원칙을 채택하였다고 해서 종교의 정치 참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서양의 중세처럼 교황이 국왕 위에 군림하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신권정치 형태는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로 종교는 정치에 참여하였습니다. 독재 정치에 맞서 민주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 투쟁이나 인권 수호에 종교는 직, 간접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남미에서는 한 때 제국주의 식민지론에 의거하여 전개되었던 좌파적 정치 사회 혁명의 선두에 해방신학이 자리잡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성직자들의 활동이 있었고, 그들의 노력은 적어도 정치적 기준에서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정치 참여일지라도 종교의 이름아래 전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양한 이해 관계가 상충하기 마련인 현실 정치의 장에 성직자나 종교인이 종교의 이름아래 특정 입장을 지지하거나 관철하려고 들면, 종교 본연의 보편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종교 본연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의 현실적 문제들에 무관심한 것은 인간에 대한 박애를 주장하는 종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이처럼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오랜 역사적 궤적을 가지고 있으며, 시대 상황에 따라 그 관계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평화와 행복은 종교나 정치의 한결같은 공통 목표라고 할 수 있기에, 종교와 정치는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비록 헌법상으로는 정교분리의 원칙이 타당한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정치와 종교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 현실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 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지니며, 종교는 정치나 현실 참여로 인해 그 본연의 보편성이 훼손 받지 않는지를 항상 경계해야 하고, 아울러 인류가 추구해 온 보편적 합리성에 부응하는 선에서 정치적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교훈에 비추어 볼 때, 최근 한국 기독교계에 일고 있는 정치 참여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독재를 극복하기 위한 민주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화로 인한 사회 분열을 수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거대 교단이 정치 참여 의지를 드높이는 것은 종교의 권력화로 전락되기 쉽습니다. 사회 분열을 보듬고, 곤궁한 사람들을 말없이 따뜻하게 살피는 역할이 아니라, 정치 권력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의 신앙적 소신을 국가 정책에 반영시켜 보겠다는 것은, 또 하나의 신권정치 유혹이라 할만 합니다.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입니다. 인간 완성과 구제에 대한 다양한 종교적 관점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이러한 다종교 사회에서 특정 종교가 정치 권력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것은 결국 종교 갈등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 분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은 특정 정치인이 자기 종교의 신앙인이라는 점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어디까지나 내면적으로 간직해야지, 국가 경영이라는 공공영역에 개인적 신앙을 관철시키려 들면 안됩니다. 종교와 정치의 만남은 실로 신중하고 지혜롭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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