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살인 사회문제 만연
생명존중사상 확대 위해
불교계 앞장서 노력해야

 

비단 사람 뿐만 아니라 미물일지라도, 살아있는 것이 살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바위틈에 쌓인 먼지 위의 잡초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이 생명력의 발현보다 더 위대한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 생명현상을 역행하는 반생명적인 현상들이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자살과 살인 문제이다. 자살은 살아 있는 생명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 반생명적인 행위이다. OECD 국가들 중에 자살율 1위인 국가, 자살 공화국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살아가면서 한두 번쯤 한계상황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는 원인을 당사자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할 상황은 지난 것 같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괴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물론 힘겨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구조 그리고 삶의 철학에 대한 반성 없이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생명경시 행위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첫걸음은 자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인식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과거나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라는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의 문제인 동시에 너의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이다.

살인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저지르는 우발적 살인, 그것도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가해지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순간적인 분노의 폭발은 속도와 편리성에 대한 댓가이다. 또한 속도와 편리함의 추구는 효율성으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은 사람에게 인내의 미덕을 상실시키는 지름길이고, 사람을 욱하게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기능은 못 본 채 하고, 순기능만 강조해 온 사고의 관성에 이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굳이 수행이라는 거창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한 박자 쉬고 천천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일은 불교도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명에 대한 존중심이 사라진 자비롭지 못하고 인간성을 황폐화 시키는 사회에 대하여 불교계는 무한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불교가 추구해 온 세계는 이 아비규환과는 전혀 반대되는 사회이고, 아직도 불교는 우리나라 최대의 종교집단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를 죽일 권리도 없지만, 남을 죽일 권리는 더더욱 없다. 불살생을 최고의 미덕으로 외치는 불교계가 더 이상 자살과 살인 문제에 침묵한다면 그것은 방조이고, 불교계 전체가 바라이를 범하는 일이다.

이제 대대적인 전 국민의 정신 힐링과 가치관 전환 운동을 불교계가 앞장서서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산문을 개방하고 국민들이 자신의 근기에 따라 염불, 기도, 참선 등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자비문중의 모든 역량을 이 일에 집중투자 하는 것이 바로 불국토의 초석을 놓는 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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