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ㆍ편협한 사고의
계금취견 빠진 종교인
큰 의심ㆍ사성제 체득 필요

 

최근 사회일각에서는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개탄의 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주장은 그만큼 종교의 내부적 모순이 많아지고, 사회적으로는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현상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는 종교적 지성의 마비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인들은 과연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성인(知性人)인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지성인은 호모사피엔스라고도 표현하는데 이는 “인간의 본질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관”을 반영한 표현이다. 즉, 지성인이 되려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성적 사고에 기반하여 형성된 지성(知性)은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통용되고 있다. 넓은 뜻으로는 지각(知覺)·직관(直觀)·오성(悟性) 따위의 지적 능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는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에,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이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불교적으로 지성인이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가? 앞서 언급한 일반적 정의에 부합하는 표현과 연계시킨다면 “사성제를 체득하여 스스로 지혜를 성취하면서 자기와 타인을 모두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성인은 자신의 지각과 인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지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상황에 바르게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성제의 지혜를 체득하여야 하고, 그렇게 형성된 지혜로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종교인들이 지성인으로 인정받고자 한다면 ‘기존의 종교적 관념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획일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하는 것’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종교적 관념은 조건지워진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에 그 시대를 벗어나면 사회적 통념과 괴리·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간화선 수행자들은 기존의 생각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큰 의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지성인이 되려고 한다면 사성제의 체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고집멸도로 표현되는 사성제는 현상을 관찰하고, 그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원인으로 형성된 현상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올바로 변화를 실천하는 지혜를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체득한 지혜로 나와 남을 차별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 준다면 그것이 바로 불교의 선지식이며, 사회의 지성인과 다를 바 없다.

종교인이 지성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계금취견(戒禁取見)에 빠져서 사회적 지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회를 떠나서 존재하기 어렵다. 종교적 지성의 회복은 그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지지받는 생각과 행동에서부터 비롯된다. 부질없는 선을 그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종교인은 사회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통 사찰에 일주문은 있는데 왜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불교적 지성인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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