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7년 계사년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남다른 포부와 의욕을 앞세워 새해를 설계합니다. 희망찬 청사진을 펼치는 이유는 제각기 꿈꾸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염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침 올해는 ‘뱀의 해’입니다. 뱀은 풍요와 지혜, 불멸의 상징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종교 때문에 뱀을 혐오하지만 사실 뱀은 우리 민족의 토테미즘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신화와 설화를 연구하는 일부 고대 사학자들은 인류문화의 중심에 뱀이 등장하게 된 이유가 우리의 조상인 풍이족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단군신화에서 천부삼인을 받아 땅으로 내려 온 환웅이 이를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천부삼인은 유럽에서 반지로 바뀌었습니다. 이 반지의 원형이 뱀입니다. 반지는 마치 뱀이 꼬리를 물고 둥근 고리를 만들고 있는 형상입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뱀모양의 모티브를 더한 반지가 프로포즈용으로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영국의 앨버트 공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사랑의 증표로 뱀모양 반지를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뱀이 풍요의 상징인 것은 다산(多産)의 알에 연유합니다. 또 허물을 벗기 때문에 순환과 영원의 심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뱀을 통해 새해 뜻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의욕입니다. 뱀이 왜 풍요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어떠한 것을 풍성하게 이루어내는 의욕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의욕은 목적한 일에 대한 성취욕구입니다. 성취욕은 나 개인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의 이익과 직결됩니다. 일에 전적으로 매진하고자 하는 마음의 추스름입니다. 의욕이 없는 사람은 창의성 또한 없습니다. 매사에 시키는 일만 충실히 해내는 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의욕이 없으면 매사가 불만입니다. 수처작주하지 못하고 매사 끌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것입니다. 반대로 어떠한 일이든 주어질 때마다 의욕적으로 달려드는 사람은 창의성을 발휘합니다.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을 개발해 적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방식이 성공을 거둔다면 웃음과 만족을 얻습니다. 이어 주위의 칭찬과 격려가 쏟아집니다. 당연히 자신의 존재가치는 그만큼 높아지게 됩니다.

의욕이란 다름 아닙니다. 남다른 지략과 용기로 도전하는 정신이 의욕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계사 속의 인물 알렉산더 대왕은 그만의 남다른 의욕심으로 훗날 영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소년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말을 파는 한 상인이 왕궁에 ‘부케파라스’라는 이름의 말을 팔러 왔습니다. ‘부케파라스’는 어찌나 억세고 완강했는지 올라타려는 사람들마다 뒷다리로 저지했습니다. 아예 사람들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자 아버지 필립왕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말 주인에게 말을 데리고 떠나라고 명했습니다. 이 때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왕자 알렉산더가 나서 말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명마를 놓아주다니 안타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에 필립왕이 “그렇다면 네가 저 말을 다룰 수 있겠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이 정도 말이라면 능히 다루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답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말에게 다가가 고삐를 쥔 뒤 태양이 내리쪼이는 방향을 향해 섰습니다. 처음부터 유심히 말을 관찰하던 알렉산더는 말이 자신의 그림자에 놀라 발길질을 하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말의 잔등을 쓸어주며 잠시 안정을 시킨 뒤 훌쩍 뛰어올라 타고는 힘차게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부왕 필립은 거금을 주고 ‘부케파라스’를 사서 알렉산더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애초 날뛰는 ‘부케파라스’를 조련되지 않은 야생마로 생각했습니다. 심한 뒷발질에 모두들 낙담해 등에 올라타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소년 알렉산더는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낙담할수록 그는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곤 무엇이 문제인지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림자였습니다. 놀라 날뛰는 자신의 그림자에 더욱 놀라 흥분하는 ‘부케파라스’의 모습에 알렉산더는 혼자 미소를 지었습니다.

의욕은 알렉산더의 예화처럼 지략이 겸비돼야 효과를 보게 됩니다. 마음만 앞세워 무작정 달려든다고 해서 다 의욕인 것은 아닙니다.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할 줄 아는 지략이 필요한 것입니다.

계사년 새해를 맞아 여러분은 여러 가지 소원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루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부처님 말씀을 꼭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계율을 지키고, 재물을 얻고자 한다면 보시를 행하라. 덕망이 높아지고자 한다면 진실한 삶을 살고, 좋은 벗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은혜를 베풀라. 그러면 그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나의 존재가치를 높이는 일은 의욕과도 직결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의욕만 앞세워서는 곤란합니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내가 추구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는지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같은 자세로 매사 의욕적으로 대처한다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정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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