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상을 살다보면 반갑지 않은 구설에 올라 망신아닌 망신을 당하거나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욱이 그 진원지가 다름아닌 절친으로 밝혀졌을 때 배신의 충격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한 파스칼의 말을 빌려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빗대 “인간은 흔들리는 갈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때 그때 감정에 휘둘려 남에게 해가 되는 말과 행동을 일삼는 이들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우바새계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착한 일은 드러내주고 허물은 숨겨주라. 남의 부끄러운 점은 감추어주고 중요한 이야기는 발설하지 말라. 작은 은혜라도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며,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항상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를 비판하는 자와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똑같이 괴로워 하거든 먼저 비판하는 자를 구하라.”

이와 관련해 〈백유경〉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방안에 앉아서 밖에 있는 어떤 사람의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두가지 허물이 있으니 하나는 성을 잘내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일을 경솔히 하는 것이다.” 문 밖에서 이 말을 들은 그 사람은 성을 내면서 방에 들어가 ‘이 어리석고 나쁜 놈아!’하면서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옆의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때리는가?”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언제 성을 잘 내며 일을 하는데 있어서 경솔했기에 이 사람이 날 흉보는가? 그래서 때리는 것이다.” 옆의 사람이 말했습니다. “네가 성내기를 좋아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을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남의 허물을 감싸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이가 나의 허물을 들추어 말할 때 그것을 참는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허물을 감싸주고 겸허히 자신의 허물을 돌아볼 줄 아는 이를 일러 현자라 말합니다.

하지만 세속의 풍경은 남을 헐뜯고 약점을 들추어야 자신이 돋보이는 듯 상대를 공격하는데 익숙합니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소개된 기사도 이같은 의미를 생각게 하는 씁쓸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헤어졌던 쌍둥이 자매가 30년 만에 만나 함께 살았지만 함께 사는 2년 동안 31건의 고소를 주고받는 ‘고소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쌍둥이 자매는 서로 “내 가방에서 돈을 훔쳤다” “친구에게 내 욕을 했다” 등 온갖 사소한 이유로 서로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왜 이런 상황을 부른 걸까요? 더욱이 한 핏줄을 나누었고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욕 한마디 조차 참지 못한 채 감정의 싸움을 벌이고 있을까요? 분노의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미래의 시간을 내다보지 못하고 당장의 노여움에 끄달려 자신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싸움을 부채질했던 것입니다.

허물을 감싸라는 것은 진실 혹은 사실을 감추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논어〉에 보면 공자와 섭공이 토론하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섭공이 말합니다. “우리 고을에 대쪽같이 곧은 사람이 있어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자식이 그 사실을 관청에 고발하였습니다.” 이 말에 공자는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다르오. 아비는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고, 자식은 아비의 잘못을 숨기지만 정직은 그 속에 있는 법이라오.” 아비의 죄를 폭로하는 행위는 정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칭찬할 일은 못된다는 것이 공자의 주장입니다. 아비는 자식의 죄를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의 죄를 숨기려는 것이 인간의 정리(情理)입니다. 세속의 아름다운 정리란 자기의 진정을 속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단순히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 자기 성취의 도구로 삼으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그것은 해악이 되어 자신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따라서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허물보다 장점을 칭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상대의 장점에 대한 칭찬은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발전적인 기틀을 다져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알프레드 아들러(1870~1937)는 아동교육에 관해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남긴 심리학자였는데, 그는 ‘하지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보라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어 프린트 숙제가 두 장 있다고 할 때 “아직 한 장밖에 안 했니?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합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은 지금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전달됩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릅니다. 이에 대해 아들러는 이렇게 말하길 권유합니다. “열심히 했구나. 벌써 한 장이나 했네. 이제 한 장만 더하면 되겠다.” 아들은 이럴 때 한 장을 마친 자신의 행동이 대견 한 것임을 알게 되고 다음에 숙제를 성취해 내는 행동과정에 적극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심리술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허물을 말하기 보다 칭찬하는 말에 주력해 보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보다 윤택해지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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