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인연 비움의 행복 깨달아”

울긋불긋하게 단풍이 든 완연한 가을, 지난 19일 울산 정광사에서는 ‘전통음식문화한마당’이 열려 축제처럼 들썩였다. 마당 한 편에서는 떡메치기를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다도 시연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박주한 불자(66)를 만났다.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불교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절에 다니는 집사람하고 많이 다투기도 했습니다. 큰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집사람이 허리가 안 좋아져 고생했는데, 갑자기 말도 없이 구인사로 3일 기도를 다녀오더니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죠.”
불교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다는 그를 아내는 ‘같이 밖에 나가자’며 항상 정광사를 지나치도록 길을 앞장섰고, 나중에는 법당에 들어가서 절을 하자고 했다. 처음엔 안 하려고 했는데 한 번 해보니까 자만심도 없어지고 생각보다 괜찮았단다.

그는 불교에 귀의하고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고 한다. 온갖 욕심을 버리며 얻은 것이 ‘행복’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토록 원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족쇄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계기로 욕심을 내려놓자 편안한 마음을 찾을 수 있었다.

▲ 박주한 서실회장이 정광사 서실에서 서예를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박주한 불자는 1992년 정광사 법당 신축공사를 하면서 새로 개설된 한문교실 선생님으로 정광사와 인연을 맺었다. 평소 한문을 좋아했고, 부인의 권유에 힘입어 시작하게 됐는데, 어느덧 20년째 붙박이처럼 정광사를 다니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시간에 신도들에게 명심보감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일이 처음이어서 두 시간을 강의하기 위해 곱절로 공부해야 했다. 3년 만에 명심보감을 끝냈을 때 당시 주지스님인 영제 스님(현 관문사 주지)이 “절에는 먹향이 나야한다”며 서실을 마련했다. 그 이후 박주한 불자는 정광사 서실회장을 맡아 신도들의 한문과 서예 실력향상에 힘쓰고 있다.

한편, 오랜 시간 공부로 한문과 서예에 조예가 깊은 그는 영산대재에 사용되는 만장(輓章)에 붓글씨를, 등(燈)에 잔글씨를 쓰기도 했다. 그는 큰 행사 때 구인사를 방문해 직접 쓴 글씨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부인 권유로 불교에 관심 가져
구인사 안거 동참 후 시 짓기도


현재 박주한 불자는 일년에 두 번씩 구인사 안거에 동참하는 열혈 신도가 됐다. 안거에 참여해 기도에 매진하다보면 시상(詩想)이 떠올라 안거가 끝나갈 때쯤 시를 한 편씩 쓴다. 그는 “평소에 이런 시는 생각도 못했고 써본 적도 없는데 구인사에서 안거를 하면 꼭 마음에 드는 시가 써진다”며 함박 웃음지었다. 안거가 없을 때는 부녀위원을 맡고 있는 부인과 매일같이 정광사에서 기도를 한다. 어느새 기도 내용도 ‘나’에서 ‘모든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기도삼매를 경험하고 싶은데 아직 수행이 부족한 것 같다. 마음자리 찾는 데 더 노력해야겠다”며 더욱 수행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주한 불자는 “정광사는 말사지만 절 분위기가 좋고 아담해 훈기가 있다. 천여 명의 신도들이 법회에 와도 번잡하지 않고 운영도 잘 된다”며 “다만 다도반ㆍ서예반ㆍ합창단 등 신행단체 활동장소가 조금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소원이 없다. 자식들도 다 결혼했고, 명예ㆍ돈에 대한 욕심도 전부 내려놔 누구보다 마음만은 부자”라며 “요즘은 무슨 복을 타서 이런 비움을 느끼는지 행복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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