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국내 과학자 72%가 “한국을 뜨고 싶다”는 설문조사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과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재미 한인 과학기술인 226명과 국내 과학인 2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국내 과학계의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과학자 10명 중 7명은 ‘미국같은 선진국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 이 땅을 떠나고 싶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더 좋은 연구환경과 삶의 여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재미 한인 과학기술인들은 귀국을 주저합니다. 한국의 과학자에 대한 낮은 보수와 열악한 연구환경 등이 발목을 잡는 주된 이유입니다.

보다 향상된 삶의 여건을 희망하는 것은 비단 과학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꿈꿉니다. 물질이 행복의 절대조건은 아니지만 행복해지기 위해선 내 삶의 주변과 여건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합니다.

행복한 삶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결혼이 늘면서 우리나라도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다문화 가정 학생 수가 5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2006년에 비해 5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다문화 가정이란 부모 중 1명 이상이 외국인인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 종단에서도 다문화 가정을 상대로 이런 저런 활동을 펴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삶의 질 문제 때문입니다.

다문화 가정과 함께 이주민의 삶도 한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낯선 이국 땅에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 그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반대로 얕잡아 보고 멸시한다면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하 지구촌은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우리나라를 방문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할 때 그들에게 따뜻한 온정과 삶의 여건을 제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곧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시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사리풋타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외도 파루티카를 만났습니다. 파루티카는 불을 섬기는 외도였습니다.

파루티카가 먼저 말을 건네며 물었습니다.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인가?”
“부처님을 찾아 뵙고 설법을 듣고 오는 길이네.”
“아직도 스승의 설법을 듣고 다니다니, 자네는 아직도 젖을 떼지 못했구먼. 나는 이미 젖을 뗀 지 오랠세.”

외도의 말투는 분명 사리풋타를 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리풋타가 말했습니다.

“그런가.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자네가 벌써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 아니요, 의지할만한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일세. 비유하면 어미소가 있는데 그 소는 거칠고 사납고 젖이 적어서 젖을 빨아도 젖이 잘 나오지 않으니 송아지들이 떠나는 것과 같네. 그러나 내가 배우는 법은 좋은 진리이고 바른 깨달음이며, 번뇌를 없애주는 가르침이며, 의지할만한 가르침이네. 비유하면 어미소가 거칠거나 사납지 않고, 그 젖은 맛있으며, 오래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고, 항상 잘 나오기 때문에 송아지들이 떠나지 않고 그 젖을 빨고 있는 것과 같네. 내가 오래도록 스승의 설법을 자주 듣는 것은 이처럼 그 가르침이 바른 것이고 훌륭하기 때문이네.” <잡아함경> ‘보루저가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어미소’의 비유는 다름 아닌 우리 삶의 문제를 일깨우고 있는 대목입니다. 재미 한인 과학기술자들이 귀국을 꺼려하는 것은 ‘어미소의 성품’과 ‘젖’에 문제가 있다 할 것입니다. 국내 과학자들이 ‘한국을 뜨고 싶다’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민들에게 ‘어미소’와 ‘젖’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미소’가 희망을 주는 존재라면 ‘젖’은 희망을 이루게 하는 자양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엘시스 테마’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1970년대 베네수엘라에서 시행했던 ‘청소년 무상예술교육 시스템’을 이르는 말입니다. 베네수엘라 경제부장관을 지내고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오일쇼크 이후 자국의 청소년들이 가난을 대물림하며 마약과 빈곤에 절망하고 있을 때 ‘엘시스 테마’로 아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를 꿈꾸도록 도왔습니다. ‘엘시스 테마’는 한 마디로 ‘희망의 바이러스’였습니다. 30년간 마약과 빈곤에 찌든 33만의 빈민가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했고 도약과 성장의 발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아브레우는 2010년 서울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불자들도 이처럼 ‘어미소’와 ‘젖’의 역할을 해야 글로벌 시대를 살면서 사람들에게 친근히 다가설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이익되고 편안한 삶을 나누도록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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