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죽음이 아름다워,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준비하는 죽음이 아름다워”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어느 순간 기약 없이 닥치는 죽음 앞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평가받게 될 뿐이다. 결국 이 세상을 얼마나 잘 살았느냐에 따라 잘 죽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사람이 때로는 곰보다도 미련할 때가 있습니다. 죽음의 소리가 들려 올 때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 버립니다. 그러다 죽음이 팔을 내밀면 그제야 질질 끌려가며 절규를 쏟아냅니다. ‘말도 안되요. 이럴 순 없어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살려주세요.'”
10여년 동안 얼마 살 수 없다고 사망 선고를 받은 1000여명의 환자들을 보살피며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온 비구니 능행스님. 능행스님은 이러한 일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은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잘 죽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능행스님이 호스피스 일을 하며 정토마을을 세우게 된 것은 1997년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계기가 됐다. 천주교 호스피스 병동의 한 수녀님이 전화로 “짐을 보면 스님 같은데 가족은 없고 임종이 임박한 사람이 있으니 한번 와보라”고 했다.
한달음에 달려가 스님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억장이 무너져 할 말을 잃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제멋대로 길어 엉망이고, 목욕은 언제 했는지 모르고, 손톱 발톱은 길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초췌한 폐암 말기의 스님이었다.
십자가 아래에 몸을 누이고 있던 스님은 모든 수발을 거부하고 있다가 능행스님을 만나서야 수발드는 것을 수락하셨다. 이 때 누워있던 스님이 능행 스님에게 “우리나라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진 종교가 불교인데, 중이 지 죽을 자리 하나 없어 남의 병원에 와서, 그것도 이렇게 큰 십자가 아래 누워서 죽을 줄 누가 알았노. 부끄러워 눈을 뜰 수가 없었제”하며 “우리 스님들 늙거나 병들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주소”라고 부탁했다.
이로부터 원을 세워 3년이 흐른 후 충북 청원군에 불교계 최초의 호스피스 시설인 정토마을이 들어섰다. 그러나 정토마을을 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랫 마을 사람들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했지만 주민들은 “우리 동네에 죽는 사람이 오는 것은 싫다”며 혐오시설 물러가라고 시위하고 법당에 죽은 사람을 쌓아 놓았다며 신발을 신은 채 들어와 뒤지는 등 막무가내 였다고 한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어떠한 괴로움과 시련도 두렵지 않았고, 정토마을 공사를 멈출 수 없었다. 이런 역경 속에서 세워진 정토마을은 이제 호스피스 운동과 불교를 접목시켜 죽음을 준비하는 곳으로 모범이 되고 있다.
사람은 종종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구나 때가되면 다 죽는 것이지, 사는 것도 힘겨운데 죽는 것을 미리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남들 다 죽는데 나도 그때 죽으면 되겠지, 나는 괜찮아, 죽고 사는 일을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면 되지......” 죽음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이로 볼 때 우리는 죽음을 너무 피상적으로 여기며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죽음은 오직 한 번 뿐인 현실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죽음은 항상 예측을 빗나간다. 그래도 죽음을 생각하고 가상 체험을 통해 죽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죽음에 임박하여 후회하는 일들을 살아서 실천해야만 그만큼 회한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평소에 우리가 잘 살아야 죽을 때도 후회 없이 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때문에 죽음 앞에 선 사람에게 종교를 통한 신앙은 등대와도 같다. 죽음 앞에서 아미타불을 염할 수만 있어도 그 복은 무량하다. 우리 불교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믿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신행으로 다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는 법을 생각하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해결 될 것”이라는 말을 통해 능행스님은 삶과 죽음이 결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043)298-2258
/한기선 부장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기원전 348년 플라톤은 임종에 이르자 제자들이 선생님의 철학에 대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는 자기의 생애를 걸고 추구해 온 과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삶 전체가 죽음준비였습니다. 죽음준비는 곧 삶의 준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 전도사를 자처하며 15년간 ‘죽음과 친해지기'를 주변에 권하고 60여회의 강연과 토론을 실천해온 사람이 있다. 88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절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각당 복지재단 김옥라 이사장이 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무섭다고 피할 일이 아닙니다. 요즘 웰빙이 유행인데 잘살기 위해서는 평소에 죽음과 친하고 익숙해 져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 신학대와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한 신학도 출신인 그는 1991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결성해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는 기독교의 생사관을 펼쳐왔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웰 다잉'을 가장 먼저 외치며 죽음의 문제를 이끌어온 단체로 주저 없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꼽는다.
김옥라 이사장이 이 회를 결성하게 된 동기는 지난 90년 남편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너무도 허망해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반년을 지내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비슷한 아픔을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공통점은 평소에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 왔다는 점입니다. 이때 죽음에 대한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죽음과 관련된 모임을 결성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도 출신인 김옥라 이사장은 60대까지 세계 감리교 여성 연합회 회장, 한국 걸스카우트 간사장, 한국 교화 여성 연합회 회장 등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이때 교류했던 인맥을 활용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1991년 6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결성하고 창립기념 강연회를 연것이 시작이었다. 여기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 이태영 한국 가정 법률 상담소장, 성악가 김자경씨, 박대선 연세대 총장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들이 뜻을 함께 했다.
당시만 해도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여서 많은 사람들이 모임 이름에서 죽음을 빼자고 했지만 김옥라 이사장이 “죽음이라는 말을 이름에 넣어야 제대로 죽음과 친해질 수 있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가진 창립 강연회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이에 김 이사장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 말은 하지 않지만 죽음에 대해 얼마나 관심들이 많은지 이 때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 후 이 모임은 매년 서너 차례의 강연회를 통해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삶이 죽음을 기피하면서 살아가는 삶보다 훨씬 건강하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또한 바르게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임을 꾸준히 알려왔다.
이런 활동을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에 생소했던 호스피스라든가 죽음 예비교육, 죽음학이란 용어들이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모임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됐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게 됐다.
김 이사장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통해 슬픔치유, 공동 추모제, 죽음 준비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죽음에 대한 준비교육을 펼쳤다. 2002년엔 국내 최초로 죽음 준비 교육 지도자 양성을 위해 교육자, 목회자, 상담 전문가,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죽음 준비 교육 지도자 과정을 실시했다.
김 이사장이 실행한 것들은 모두 죽음과 관련 있는 프로그램이니 결국 잘 죽는 법을 전파하고 있는 셈이며, 이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김 이사장은 “죽음도 삶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잘 살았던 사람이 죽음도 잘 맞이하는 것인 만큼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옥라 이사장에 의해 창립되어 올해로 15년째를 맞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회장 홍양희)는 4월 1일 오후 2시 연세대 상경대 강당에서 ‘암과 생명'을 주제로 기념 세미나를 개최한다.(02)736-1928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