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또 다시 ‘묻지마 범죄’가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의정부, 인천, 여의도, 울산 등지에서 일면식도 없는 시민을 대상으로 무작정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연일 발생해 무고한 시민들에게 충격과 걱정을 안겨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 피의자들은 2000년 306명에서 2005년 319명, 2010년에는 465명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들 묻지마 범죄인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한결같이 사회적 단절과 경제적 낙오 등의 소외와 패배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8년 10월에 서울 논현동 고시원 화재 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당시 이 사건의 피의자 정모씨는 고시원에 불을 지른 것도 모자라 입주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6명이 숨졌습니다. 정씨는 범행 후 경찰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고 말했습니다.

2010년 8월에는 공사판을 전전하던 윤모씨가 서울 양천구 신정동 다세대 주택 옥탑방에 들어가 TV를 보고 있는 부부를 살해했습니다. 경찰이 전한 윤모씨의 범죄 동기 또한 너무나 어이없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배회하던 중 가족의 웃음소리를 듣고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들을 ‘사회적 루저(실패자)’라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묻지마 범죄’에 대해 일부 언론들과 학자들이 ‘우발적 사건’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기론을 가르치는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어떠한 결과가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묻지마 범죄’ 역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 경찰대 이웅혁 교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사회와 연결고리가 끊어진 이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분노를 범행으로 표출한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사회적 단절이 끔찍한 범행을 부른다는 진단입니다. 실제로 인간은 단절과 고립으로 말미암아 ‘소중한 자아’를 망각하게 됩니다.
불교는 이러한 단절 및 고립자에 대해 혼자 서게 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며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는 종교입니다. 여기에는 자비심이 발동돼야 합니다. 불교의 자비는 ‘편견없는 아량’이며 모든 존재를 감싸 안는 ‘보편적 자비심’을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가 존재하듯이 그들도 존재한다. 그들이 존재하듯이 나도 존재한다”는 기본 인식하에 불자라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와 자신을 동등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처님은 <자비경>에서 이렇게 함축해 게송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자식을 보호하듯 그것도 하나 뿐인 자식을/꼭 그와 같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서/한 없는 자애의 마음을 지닌다. 전 우주를, 높고 깊고 넓은 곳/끝까지 모두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길러라/미움도 적의도 넘어선/잔잔한 그 사랑을.”

부처님의 게송대로 따르자면 우리 사회에 단절자가 나오고 고립된 이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 또한 응당 우리가 함께 져야 합니다. 엄중히 말해 ‘묻지마 범죄’는 우리 사회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업(業·Karman)의 가르침 중에 공업(共業)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생활여건들은 그 일차적 원인이 자신의 업에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산하대지와 함께 우리가 공통으로 받는 과보가 공업(共業)인 바, 쉽게 말하면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복락을 거머쥐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부처님이 계율을 통해 술과 마약 등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음료를 금지토록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술과 마약은 인간의 성품을 흐려 놓습니다. 즉 사람을 흉폭하게 만들고 이성을 마비시켜 주위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게 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없게 되므로 도덕심이나 죄의식 마저 흐려집니다. 실제로 ‘묻지마 범죄’는  음주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단절로 인한 패배감에 낙담해 있는 그들에게 술은 잔인한 폭력성을 갖도록 부추기게 됩니다.

대신에 부처님은 목마른 이를 위해 우물을 파고, 강을 쉽게 건너도록 다리를 놔주며, 병든 자를 위해 약과 간호를, 지친 여행객을 위해 쉼터를 만들 것을 권장하셨습니다. 실제로 동남아 여러 불교국가들은 부처님 말씀대로 이러한 사회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

모든 산하대지와 우주만물은 다 공업중생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부처님이 우물과 다리와 쉼터를 놓는 공덕이 크다 하심은 요즘 말하는 사회적 단절자에 대한 배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이러한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깊은 연민과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끔찍한 ‘묻지마 범죄’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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