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운 덕 대종사


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불교에서는 출가자를 일러 ‘대장부’(大丈夫)라 칭합니다. 속가의 모든 인연을 끊고 험난한 수행의 길을 선택했으니 대장부라 일컬을 만합니다.

이런 대장부들에게 불가에서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 정진의 길을 가르칩니다. 또한 왕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권력 앞에서도 출가 수행자는 고개 숙여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헤진 누더기 옷 한 벌을 걸쳐 입고 있어도 얼굴은 평안하고 안온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대하는 것이 출가 수행자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부처님은 카필라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출가를 막으려 했던 부왕 슛도다나에 의해 호사스런 왕궁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언제나 빛의 세계에서 호강을 누렸던 부처님이 마침내 출가를 단행해 깊고 적막한 어둠의 세계에 발을 디뎌놓았을 때 조금이라도 위축되고 겁을 냈다면 ‘위대한 출가’는 실패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수많은 독충과 뱀의 위협에도 부처님은 절대로 몸을 움츠리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빛의 세계에 익숙해 있던 사람이 어둡고 깜깜한 깊은 숲 속에 홀로 들어가 밤을 지새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더욱이 맘만 돌이키면 언제든 왕자 신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말 그대로 금강석처럼 견고했습니다. 한낱 어둠과 독충과 나약함에 굴복한다는 것은 비겁이었습니다. 한순간 비겁해진다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사실을 부처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당당했습니다. 불퇴전의 용맹심으로 자신을 담금질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무상대도를 성취한 부처님은 교단을 형성한 후 ‘정법은 국법을 넉넉히 포섭한다’는 말로 출가 수행자의 지위와 자긍심을 높였습니다. 정법이 국법을 포섭한다는 것은 국법이 버리는 자라도 정법은 포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례로 경전에 나오는 살인마 앙굴리마라를 당시의 국왕 빔비사라가 국법에 의해 처단하려 할 때 부처님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교화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 다문제일로 알려진 아난다의 전생이야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옛날 한 왕이 코끼리를 타고 위엄을 뽐내려다, 자신이 탄 코끼리가 암코끼리를 보고 음욕이 발동한 나머지 사납게 몸부림치는 바람에 죽을 뻔 하다 겨우 살아났습니다. 왕은 코끼리 훈련사인 상사에게 불에 달군 철환을 먹이도록 명령했습니다. 화가 오를대로 오른 왕의 명령에 상사는 시뻘겋게 달군 철환을 코끼리 앞에 내놓았습니다. 상사가 재촉했습니다. “너는 어째서 이 철환을 먹지 않느냐?”

코끼리는 슬픈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며 생각합니다. “이 대중 가운데는 내 목숨을 구해줄 사람이 없구나. 내가 이를 거부한다면 상사의 목숨마저 위태롭겠다.”

코끼리는 마침내 뜨거운 철환을 입에 물고 삼켰습니다. 불에 단 철환은 코끼리 뱃속에 들어가 내장을 태우고 뚫고 나왔습니다. 코끼리는 곧 죽어 넘어졌고 땅에 떨어진 철환은 연기를 뿜으며 타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슬피 울었습니다. 왕은 상사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길들인 코끼리는 이처럼 잘 순종하는데, 어째서 그 날은 난리법석을 피웠느냐?”

“저는 코끼리의 몸만을 다룰 수 있을 뿐, 그 마음은 다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몸도 다루고 마음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없느냐?”

“부처님이라면 몸도 다루고 마음도 다룰 수 있습니다.” 왕은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목욕하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뒤 높은 다락으로 올라가 사방을 향하여 절하곤 향을 사르며 원을 세웠습니다. “내 모든 공덕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돌려보내나이다. 내가 부처를 이룬 다음에는 내 마음을 다루고 또 모든 중생을 다루겠습니다. 만약 한 중생을 위해 무간지옥에 들어가 한 겁을 지냄으로써 그에게 이익이 된다면 나는 그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끝내 보리심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은 이 전생이야기를 통해 상수제자 사리불이 그때의 ‘상사’이며 아난다가 ‘코끼리’였음을 밝힙니다. 나아가 무간지옥에 들어가더라도 나머지 한 중생마저 건져내겠다는 서원을 밝힌 왕이 부처님 당신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철환먹은 코끼리 이야기에는 비겁과 비굴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이를 향한 보호본능과 연민이 대장부다운 결단을 하게 만듭니다. 

뜻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면 조그만 인연으로도 큰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목표와 꿈이 있습니다. 그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비겁함입니다. 사람이 비겁해지면 비굴해지고 비굴해지면 결국 무릎을 꿇게 됩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의미는 목표와 꿈 앞에 항복했다는 포기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비겁해져서는 안 됩니다. 비겁은 나를, 내 존재를 미약하게 만드는 단초입니다.

뜨거운 날씨에도 용맹정진의 기백을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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