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울렁증으로 파행
‘한국’빠진 WFB 한국대회
울렁증 척결로 세계성 갖추자

영어 울렁증이란 말이 꽤 널리 알려져 있다. 능숙하지 못한 영어로 말을 할 때 드러나는 증세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외국어 실력 때문에 나타난 증세처럼 말하지만 대중 앞에 서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상이다. 스스럼없이 말을 잘한다는 서구인들도 대중 앞에서 말하는 일을 제일 두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렁증은 말에만 국한된 일은 아닌 듯 싶다.

이번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한국대회에서 한국 불교계의 외국어 울렁증은 도가 지나쳤다. 이제 한국 불교계도 각종 국제 행사나 교류 속에서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외국어 특히 영어로 우리의 입장과 모습을 표출시키는 일이 잦아졌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인지하고 그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과 똑같은 수행을 공유할 때 불교의 세계성, 보편성은 확대된다. 그런 의사소통 과정에는 영어에 능숙한 스님, 불자들이 끼어있었다.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인들이 모이는 각종 국제행사와 학술회의에서는 이런 뿌듯한 일은 커녕 이 행사와 회의의 내용이 어떻게 전달되고 교류되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수에서 진행한 세계불교도우의회(WFB) 행사 현장은 이런 사태를 또 한 번 보여줬다.

단순히 영어 표현의 미숙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세계불교도우의회 한국대회에는 한국의 불교, 한국의 스님, 한국의 불자들이 완전히 실종되었다. 무엇보다 회의 아젠다 설정부터 회의의 중심인 학술회의까지 파행을 면치 못했다. 학술회의에 초청된 저명한 학자들의 논문 발표가 취소되고, 논평자로 나선 한국의 불교학자들은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했다. 그럼에도 회의 주최측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 못했다. 적어도 이 회의가 한국에 유치될 때까지는 짧지 않은 준비기간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여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간과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외부 관찰자로서 나는 글을 통해 이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역설한 바 있다. 여수국제박람회와 세계불교도우의회의 연동은 1893년 한국이 최초로 참가했던 미국 시카고 세계박람회와 연계해 개최된 세계종교의회(World Paliament of Religions)와 닮은꼴이라며 그 의의를 찬양했다. 그래서인지 학술회의도 환경문제, 동서교류에서 한국불교의 적극적 기여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실종되었다. 우의회본부의 지시에 의해 학술회의는 취소 직전까지 갔다. 그것도 단순한 영어 울렁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티벳불교와 중국불교가 충돌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미리 예견됐었다. 이번 세계불교도대회는 불교를 통해 현실문제를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어야 했다. 전 티벳 정부 수반이었던 삼동 린포체까지 참석하고 있으니 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중국 대표단이 현장에서 참석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을 때에도 울렁증을 극복한 한국의 스님, 불자 전문요원은 없었다. 장소만 한국이었지 한국이 배제된 불교국제행사였다. 정부의 적지 않은 행정ㆍ재정지원과 호남지역 불자들의 헌신적 봉사와 정성 어린 기금으로 마련된 이 호화판 불교행사가 외국어 울렁증 때문에 회의효과가 손상을 입었다면 그 폐해는 너무 크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외국에서 연구를 하고, 수행을 하고, 국제적 감각을 몸에 익힌 스님들이 많다. 그리고 외국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가르친 재가 불교학자들도 많다. 왜 이런 이들이 계속 배제되고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조계종단의 개혁 혁신안에는 외국어 울렁증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와 척결도 포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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