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6년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는 탄생게를 설파하셨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게송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 홀로 가장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뒤의 게송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란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로 해석됩니다.

부처님은 이 사명을 지니고 사바세계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불가해한 세계의 무거운 짐과 중생들이 받는 고통을 볼 때마다 부처님은 커다란 연민에 휩싸여 더욱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특히 카필라바스투에서 사문유관을 통해 보게 된 네 장면, 즉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은 노인, 고열에 시달리는 병자, 머리를 풀어 헤치고 곡하는 사람들이 따라가는 시체, 어느 탁발 수도사의 이야기 등 세상의 고통은 부처님의 감수성을 자극했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장면들은 부처님의 마음 속에 뿌리 깊은 짐으로 자리했습니다.

부처님은 그리하여 중생들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 뼈를 깎는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붓다’[覺者]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녹야원에서 첫 귀의한 다섯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미 세상과 인천의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이제 세상과 인천의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세상으로 나가 모든 사람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설법하라.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고,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말로 가르쳐라.”

〈잡아함경〉‘승삭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법에 귀의했을 때 평등의 경지가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살펴봐야 합니다. 부처님은 다섯 제자에게 당신과 마찬가지로 ‘올가미’에서 벗어났다고 강조하시며 세상에 나가 중생들의 안락과 행복을 구하라고 선언하십니다.

부처님은 실제로 중생들에게 ‘평등’과 ‘평화’를 큰 선물로 주셨습니다. 평등이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면 평화는 마음의 평정을 일구도록 하신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인도는 카스트 제도에 의해 신분이 계급화되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중생의 평등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출생에 따라 브라흐만이 되는 것이 아니며, 출생에 따라 불가촉천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의 행위에 따라 브라흐만이 되며,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불가촉천민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가난한 자들과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도 평등한 관계에서 ‘공동체의 정신’을 발현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평등정신을 일러 ‘무차별 평등성’이라 합니다.
승가의 구성도 이러한 정신이 농익어 이루어졌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인분을 퍼나르며 생계를 유지했던 ‘니제’와 이발사였던 ‘우팔리’, 살인자였던 ‘앙굴리말라’와 같은 천민과 범죄인, 심지어 몸을 팔아 살던 기생도 승가의 품 안에 받아들입니다. 한 마디로 평등체 실현의 모델로서 불교의 출현을 널리 알렸던 것입니다. 또한 각종 의례를 통해 동물희생을 허용하고 있던 베다의 권위도 부정하셨습니다. 한 무리의 종(種)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함은 사회적 평등과 평화를 깨뜨리는 행위로 간주하셨기 때문입니다.

변증법 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바르트(Barth, 1886~1968)도 부처님의 삶과 사상을 접하곤 놀라 그의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중생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베푼, 고요하고 친절한 위엄과 고통받는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의 전형을 완성하였다. 부처님은 오직 선하고 지혜로운 언행을 보였으며, 그는 세상의 빛이었다.”

고착화되어 있던 카스트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평등한 승가공동체를 꾸려 교단을 이룬 부처님의 매력에 서구 신학자도 흠뻑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무차별 평등정신은 장애인이나 병약자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잡아함경〉‘발가리경’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부처님이 라자가하 교외 칼란다 대나무 숲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존자 박카리가 마을의 옹기장이 집에서 중병으로 앓아눕게 되었습니다. 살 가망이 없음을 안 박카리는 죽기 전 부처님을 뵙길 원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얘기를 전해 듣고 친히 박카리를 찾아 가 문병을 하게 됩니다. 박카리가 병든 몸을 일으켜 절을 하려 하자 이를 만류하며 부처님이 말씀하십니다.

“박카리야, 이 늙은 몸을 보고 예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대는 알아야 한다. 진리를 보는 자가 부처님을 본다. 부처님을 보는 자가 진리를 본다.”

부처님의 법 안에선 누구나 평등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진리[법]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부처님과 함께 한다면 ‘평등 평화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올해 부처님 오신날 메시지를 평등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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