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희 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갈등은 대립·소통부재서 비롯
자신의 종교·이념 내려놓고
진솔한 삶의 언어로 소통하자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사회에서 종교 간의 갈등처럼 어리석으면서도 치열한 것이 없기에 종교 간의 화합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원래의 종교적 목적도 잃어버리고 상대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대하다보면 서로 소통하거나 최소한의 상호이해마저 차단된 채 대립과 분열로 서로의 삶은 피폐해진다.
여러 종교가 공존함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웠던 한국 사회에서 점차 종교적 갈등이 깊어져 가는 것 같아 뜻있는 이라면 누구나 걱정을 하게 된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종교 갈등만이 아니라 매우 많은 대립과 소통 부재가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과학시대에 있어서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은 물론, 기존에 있어 왔던 이념, 지역, 인종 간의 갈등과 신자유주의 시대 속의 계층 간의 갈등도 확대되고 있다. 멀리는 99%의 금융가 점령 시위로부터 가까이는 용산 사태나 쌍용차 사태 등 계층 간 갈등이 점차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층위에서의 대립과 반목을 바라볼 때,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필요하다. 

물론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면 되겠지만, 그저 마음을 비우고 성심성의껏 하면 된다는 상투적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다른 문화나 집단에 속한 이들과 대화할 수 있을 지 소통의 방식과 모양을 고민할 때다. 소통하기 위해 상대방과 똑같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기도 어렵거니와 그것은 다양성의 상실이자 자신 정체성의 소실이다.

다양한 존재들의 있는 그대로 여여함을 말하는 화엄의 세계를 생각해 보자. 집단이나 문화권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면 차라리 우리 모두 저만의 진정한 목소리를 되찾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종종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억압된 이들에게나 필요한 것으로 착각한다. 허나 내 목소리를 되찾는 것은 결코 억압된 계층이나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전공, 이념, 종교, 계층의 틀 안에 갇혀 자신의 삶을 소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할 수 있다.

우리 각자는 진보이고 보수이며, 기독교신자이고 불교신자이며, 왜 과학을 전공하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속한 집단에 의해 너무 많이 훼손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목소리는 없이 그저 각자가 속한 집단의 목소리를 낼 뿐이다. 이것은 각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지 못하고 집단의 목소리로만 말해야 하는 비참함을 의미한다. 평생 한 학문만을 했다고 하는 이가 자신의 목소리 없이 유명학자의 말만 되풀이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내 목소리가 집단의 목소리로 들린다면, 과감히 자신의 종교나 이념의 언어를 내려놓고 자신의 삶의 언어로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너와 나의 삶의 언어가 필요하다.

과학 내지 학문, 이념, 종교는 인간의 삶을 위해 (인간의 삶은 건강한 생태계로부터 유지되기에 인간의 삶이란 인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있다. 따라서 다양한 집단이나 문화, 더 나아가 계층, 이념 등 모든 것들의 공통기반으로서 인간의 삶이 존재하기에 서로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언어가 다른 이들이 만나도 손과 발과 표정으로 서로 소통하고 더불어 갈 수가 있는 이유다. 각자의 언어에만 매달려 있고 말을 하려 한다면 결코 소통은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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