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20세기 현대사는 10·27 법난이라는 쓰라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안고 있다.
중국 불교 2천년사는 회창 법난 등 4대 법난과 문화혁명이라는 불교 파괴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국 불교에서는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라는 조선조의 억불정책이 대표적인 불교 탄압이었다. 10·27 법난은 조선조 억불에 버금하는 승려들의 인권 유린과 ‘종교계 정화'라는 이름으로 불교 탄압이 자행된 전무후무한 한국 불교의 어두운 역사다.
1980년 10월 27일 밤 무장한 군대가 전국의 유명 사찰들을 기습해 군화발로 법당을 짓밟으며 곳곳을 샅샅히 뒤지고 이름 있는 원로·중진을 포함한 수많은 스님들을 연행, 구타와 고문을 가했다. 종무 관련 정부 고위 공무원 까지도 함께 정보 기관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또 절에서 수색, 압수한 물건들도 낱낱이 공개되고 계엄하의 검열을 거친 합동수사본부의 과장된 불교 비리 발표가 신문에 대문짝 같이 보도 됐다. 이른바 10·27 법난이라 불리는 불교 탄압의 단면들이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것은 사건이 있은지 25년이 넘도록 법난의 의도와 실체에 대한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난의 기획 및 입안 책임자도 명확히 규명된 바가 없다.
정부가 1988년 국무총리 담화와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 등을 통해 밝힌 법난의 직접 지시자는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노태우보안사령관이다. 국방부는 5공 청문회 때 과잉 수사와 과잉 보도를 사과했다. 이것이 10·27 법난에 대한 25년 동안의 경과다. 구체적인 기획 및 입안 책임자는 물론 당시 스님들이 당한 고문과 인권 유린의 진상도 소상히 밝혀진 바 없다.
최근 조계종 10·27 법난 진상 규명 및 명예회복추진위원회가 구성돼 국회 청원 절차를 거쳐 ‘진상 규명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하고 작성한 초안을 곧 공청회를 열어 다듬을 예정이라고 한다. 초안에는 9명으로 구성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두어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조계종은 95년 ‘중앙종회 법난 조사특별소위'를 구성해 관계 요로를 방문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그 많은 과거사 규명위원회가 설립되고 지난 날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한 규명 노력을 경주하는 데 어찌해서 불교 10·27 법난은 빠져 있는지 의아스럽다. 정교(政敎)분리가 보편화 된 인류 사회이고 이를 헌법으로 명시하는 현대 국가들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대명천지에 국가 권력을 동원한 불교 법난이 있었다는 사실은 과거사 규명 차원 이전의 ‘도덕적 패륜'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국가 권력은 겸허한 자세로 진상을 밝혀 뒤늦게 나마 진정한 참회를 함이 마땅하다.
불교계도 이처럼 중대한 자신들의 ‘역사'를 내부적으로라도 정리하지 못한 능력의 ‘한계'를 내성(內省)하는 자세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 당시 군사 정권의 작법이 패륜적이고 무도했다는 점을 비난하는 것만으론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없다.
우선 당시 승려들 인권 유린 사례라도 체계 있게 모아 정리해야 한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단초는 여기서부터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10·27 법난의 진상은 꼭 ‘특별법 제정'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온 불교계의 새롭고 야무진 발심을 거듭 촉구한다.
종교편향적 지자체장 후보를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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