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ㆍ부정의 논리보다
상대 말 귀 기울이는
지혜로운 인물 찾자
요즘 시중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안돼!”와 “그래?”다. 이 단어를 문자로 보면 건조하지만, 일정한 가락과 억양을 섞어 발화하면 아주 맛깔스런 말이 되어 사람들을 웃긴다. 굳이 사족을 달지 않아도 이 유행어의 진원지가 공영방송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개그 프로그램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두 단어는 SNS의 문자메시지에서 대학 강의실까지 거의 전역에서 빈번히 활용, 패러디된다. 지난 주말 공군의 신병 훈련수료식장에서 훈련단장이 “안돼!”, “그래?” 등 특정 유행어를 적절하게 사용해 군대 특유의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젊은이들의 기호를 고려하여 교육 하지 않으면 마이동풍일 뿐이라는 사실을 군의 최고 장성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많이 듣고 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특별한 통계자료를 확인한 것은 아니나, 내 짐작으로는 아마도 “안돼!”(“에비!”와 “지지!”도 넓은 의미의 이 범주에 포함된다) 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이 말을 들어왔고, 듣고 있으며, 앞으로도 들으며 살 것이다.
어려서는 이 말이 싫었던 사람들도 부모나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면 거의 예외 없이 아랫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엄마, 오늘 친구랑 놀고 걔네 집에서 자고 올게요”라는 자녀의 간절한 부탁을 거의 모든 부모는 “안돼!”라는 한 마디로 일축한다. 거기에는 어떤 타협과 절충의 공간이 없고 단호하고 싸늘한 벽만 존재할 뿐이다. 이에 반해 “그래?”란 말 속에는 상호소통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 말의 어감에는 상대 생각을 수용하여 제 의견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돼!”와 “그래?”는 아주 궁합이 잘맞는 유행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명칭이 ‘비상대책위원회’이고, 경찰·군의 수뇌에서 더 나아가 대통령까지 등장하여 어리숙한 언행으로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는 스토리도 파격적, 상징적이다.
국회의원 선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서로 경쟁하듯 당의 이름과 정체성을 바꾼 것으로도 부족해, 국가의 명운과 위신이 걸린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대립하며 상대를 비방한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지난날의 약속을 뒤집는 일은 다반사며, 제 눈의 들보는 생각 않고 상대의 눈엣가시만 과장한다. 그들에게는 “안돼!”의 거부와 부정의 논리만 있을 뿐 “그래?”의 타협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명색이 대의정치의 일꾼인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극단적 대립의 길만 고집한다. 그런 사람들이 모였으니 국회에서 기물을 훼손하고 최루탄을 투척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제까지의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선량(選良)이라기보다 ‘꾼’과 ‘투사’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국민을 기만해왔던 것이다.
집안에 있으면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빗소리인지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 소리인지 알기 어렵다(鏡淸不迷). 그렇다고 남의 말에만 의존하면 자신을 놓치게 된다. 앞으로 우리는 국회의원 출마자들의 달변과 궤변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할 것이다. 그들 중에는 분명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밤잠을 설치고 깊이 고민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옥석이 마구 뒤섞여 있는 후보군(群)에서 참된 구슬만을 골라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절대적 의무요 책임이다. 옥석을 가리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안돼!”보다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을 주목했으면 한다. 그는 어리석고 둔해 보일지 모르나 상대 말에 귀 기울이는 여유와 지혜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