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현명하지 못한 처사로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 종종 있습니다. 먼저 〈대위덕다라니경〉 제4권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과거세 연등부처님과 이익동자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아난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동자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봄철 뒤의 더운 때에는 타듯이 더운지라 시원하고 찬 물을 생각하게 되고 추운 겨울에는 다시 뜨거운 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의 봄과 겨울의 시원하고 추운 것에 다시 다른 경계는 없는 것이며, 오직 행동이 바뀌었을 뿐이니 선하지 않은 법이기 때문에 갖가지로 사랑하는 생각을 내고 사랑하는 생각 때문에 분별이 생기며 만일 분별이 생기면 그것은 곧 선이 아니니라. 너는 보리의 인연을 위하여 분별을 짓지 말지니라.”

최근에도 한 어린 중학생이 학업에 대한 부담을 못 이겨 자신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습니다. 또한 학교 폭력이 대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의 근심 걱정이 날로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엔 선생님들이 무더기로 명예퇴직 신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명퇴신청은 여교사와 정년퇴직을 앞둔 50대 선생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유를 들어보면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학생들의 폭언, 집단 따돌림으로 촉발된 학교폭력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과 냉소가 선생님들의 명퇴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선생님들마저 학교를 등지겠다는 생각은 옳지 못한 처사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이러하므로 그같은 곤욕을 당하느니 평범한 자유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학교 내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 또는 담임 선생님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몰아가는 현 기류가 매우 잘못됐다는 점도 상식있는 국민들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보다 큰 책임과 의무감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물을 찾고 추운 겨울날엔 따뜻한 물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분별심을 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경계를 나누고 눈 앞의 현상에 놓여질 나의 이익을 좇아 처신한다면 올바른 스승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이를 일러 ‘선이 아니다’라고 하신 뜻은 지혜로운 이로서의 행동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 정행(正行)이 갖는 의미를 다시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정행이란 다름 아닙니다. 원칙과 소신을 지녀야 제 신분에 맞는 올바른 처신이 나옵니다. 학생들이 위기에 몰리고 있을 때 스승의 신분을 저버린다면 누가 그에게 박수를 보내겠습니까?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대형 여객선을 몰던 크루즈호 선장이 배를 좌초시키고 승객들을 버린 채 도망쳤던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이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부끄러움에서 연유된 격노감을 분출하며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선장’이라고 성토했습니다. 나아가 ‘공공의 적’으로 그 선장을 명명하고 나섰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늘 보리행을 가꾸어 나갑니다. 이름과 직위에 집착하는 순간 분별심의 경계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자성이 허공과 같은 것이라 할 때 허공을 가리는 구름과 비바람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보리의 후퇴이며 보리심을 깨뜨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옛 큰스님들은 보리와 관련된 행위를 이렇게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수레는 움직여 짐을 날라야 그 직분을 다한다 할 것이다. 아무리 황금으로 장식된 수레라 하더라도 깊은 창고에 놓여 있으면 수레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것이다.”

뛰어난 학식과 모범적인 행실을 갖췄더라도 스스로 그 몸을 숨긴다면 창고 속에 감춰진 황금수레처럼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옛날 어떤 국왕이 지혜로운 이를 가려 대신으로 삼고자 발우에 기름을 가득 담아 20리 떨어진 ‘조희’라는 동산까지 가도록 하는 시험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하들은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기름을 쏟기 일쑤였습니다. 그 중 불법을 믿는 한 신하가 있어 기름이 가득 든 발우를 들고 조심스레 발을 옮겼습니다. 수레와 말을 탄 사람이 길을 메우고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걸음걸이를 흩트리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리며 사나운 바람이 나무를 꺾고 번개가 번쩍거려도 그는 오로지 기름만을 생각하고 그런 소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한 방울의 기름도 흘리지 않고 ‘조희’동산에 이르렀습니다. 〈수행도지경〉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삼독심이 마음을 흔들 때라도 안으로 살피고 밖으로 다스리면서 정행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주위의 흔들림에도 꿋꿋이 중심을 바로 잡는다면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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