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는 세상과의 대립 아닌 물아일체 동참

 

千山鳥飛絶 모든 산은 새들이 날기를 멈추었고,
萬徑人踪灰 모든 길에는 사람의 발자취가 끊겼다.
孤舟蓑笠翁 외로운 조각배 위 도롱이에 삿갓 쓴 어옹,
獨釣寒江雪 홀로 눈 내리는 강 위에서 낚시를 한다.
- 柳 宗 元 -


선시는 자연을 빌어 도(道)를 형상화한다. 말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선의 도리는 이렇게 상형화돼 비로소 우리가 가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유종원의 선시 《눈 내리는 강》은 산과 길을 배경으로 한 눈내리는 강 위에 삿갓 쓴 어옹이 등장해 낚시를 한다. 이 시는 겨울철 산야와 낚시의 풍경을 무미 건조하게 나열해 놓고 음미하는 관조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조용히 내성(內省)에 침잠해 시를 감상해 보면 존재의 밑바닥 고독의 심연을 찌르는 무궁무진한 선리(禪理)가 넘쳐난다.
소동파(1037-1101)는 유종원을 평하길 “유독 위응물(韋應物)과 유종원 만이 간략하고 고박(古朴)한 데서 섬세하고 간결함을 발휘하여 담백한 맛을 깃들였으니 나머지 사람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정치적 동지였으며 문우였던 유우석은 유종원의 작품을 평가하는 가운데서 ‘천연'과 ‘수미(邃美)'라는 예술 품격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즉 유종원의 시는 조물주의 묘한 조화가 만물을 생성해낸 듯한 자연스러운 품격과 천길이나 되는 깊고 푸른 연못과 같은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교사상, 특히 선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의 산수시는 외형상으론 그저 인간과 자연의 조합을 노래했을 뿐 불교사상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해 살펴보면 그의 산천경물 묘사는 사람이 없는 고요와 쓸쓸함(寂寥無人), 차가움(凄神寒骨), 적적한 모양(愴愴幽邃)의 예술 경계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다시 말해 자연계의 산수 관조를 빌어 고적냉청(孤寂冷淸)한 내심 세계를 읊조림으로서 ‘종교를 말하지 않은 종교'를 설파한다. 이것이 바로 ‘무법(無法)의 법', ‘상외지상(象外之象)'·‘언외지의(言外之意)'를 강조하는 선의 본질과 일치하는 점이다.
이 시는 유종원이 영주 사마로 좌천돼 산천을 벗하며 지내고 있을 때의 작품이다. 그래서 시 속의 ‘사립옹'은 세상에 대한 뜻을 버리고 산수 방랑의 인생을 추구하고 있던 시인 자신이며 세속에 초월해 있는 한 소식한 한도인(閑道人)이기도 한 것이다.
앞의 2구는 원경, 위에 2구는 근경으로 대비돼 있다. 새와 사람의 자취가 모두 절회(絶灰)한 앞의 2구는 의식이 끊어지고 생명이 없는 얼어붙은 응고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뒤의 2구에서 노인의 배경이 되고 있는 외딴 조각배(孤舟)와 독조(獨釣)는 노옹(시인)의 내심 세계의 외적 표현이다. 시인의 심정이 객체인 자연을 통해 투영된 사람과 새의 ‘회(灰)'와 ‘절(絶)'은 노옹에게서는 ‘고(孤)와 독(獨)'으로 설명되고 있다.
시인은 앞의 ‘인조회절(人鳥灰絶)'을 뒤에서는 ‘고주독조(孤舟獨釣)'로 이어 받아 차갑고 냉철한 선경(禪境)의 세계를 극대화 시켰다. 이는 굴원이 『어부사』에서 읊조린 “모든 사람이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고 세상이 모두 오탁(汚濁)인데 나만 홀로 깨끗한” 경계와 같은 것이다. 시인은 혼탁한 속세를 버리고 홀로 자연이라는 종교의 경계, 즉 ‘종교 밖의 종교 세계'를 설정해 독대하고 있다.
‘사립(篩笠:도롱이와 삿갓)'은 어부의 복장이라는 선명한 감각을 갖게 한다. 어옹은 선가와 사대부들에게서 세속에 초연한 ‘한도인'의 상징으로 통용된다. 우리나라에도 유유자적한 낙도의 생활을 그린 ‘어부가'들이 많이 있다. 유종원은 《어옹(漁翁)》(漁翁夜傍西岩宿, 曉汲淸湘燃楚竹, 烟銷日出不見人, 矣欠乃一聲山水綠)이라는 시에서도 어부의 ‘초연함'을 빌어 선경의 해탈을 지향했다.
눈(雪)은 “천산조비절 만경인종회”의 원인이다. 눈이 쌓여 인적이 끊기고 새들도 오고감을 멈추었지만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홀로 낚시를 하는 고주노옹(孤舟老翁)은 산야가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순백의 은빛 세계와 어울려 텅빈 영혼과 몽롱처청(朦朧凄淸)한 미감을 느끼게 한다. 독자들은 여기서 어렵지 않게 선의(禪意)와 선경을 음미하게 된다.
유종원의 《강설》은 외형은 자연 산수시지만 이처럼 선불교의 고냉처청(枯冷凄淸)한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선을 말하지 않은 선시'다. 《강설》이라는 시의 제목 부터가 추위를 느끼게 하는 의경(意境)을 담고 있고 시의 내용에서는 정적을 묘사하지 않은 구절이 없다. 앞의 2구는 넓고 멀며 아득하고 광활한 배경을 제시하면서 천산·만경이라는 대천세계의 일체 생명이 모두 절회(絶灰)된 상태를 빌어 우주 공명(空明)을 설법하고 있다. ‘천산'은 새들이 날며 춤추고 사는 서식지요, ‘만경'은 너와 내가 오가는 길이며 인류가 번잡하게 왕래하는 모양을 상징한다.
앞의 2구는 각 구절의 끝자로 ‘절(絶)'과 ‘회(灰)'가 배대되면서 감각상으로 처연함을 극대화 하면서 ‘춥다'는 의경을 다시 한번 배가시킨다. 시의 선적 지취(旨趣)는 뒤의 2구 각 구절 첫자로 나오는 ‘고(孤)'와 ‘독(獨)'에 있다. 선이 추구하는 가치는 절대 자유다. 자유로워지려면 고독해야 하고 고독하기 위해서는 비밀을 가져야 한다.
선이 노닐고자 하는 고독은 로빈슨크루스의 고독이 아니라 눈보라 속에서 홀로 낚시를 하는 정중동(靜中動)의 고독이다.

뫼에는 새 다 그치고 들에는 지나는 사람 없다
외로운 배에 삿갓 쓴 저 늙은이
낚시에 맛이 깊도다. 눈 깊은 줄 아는가.

조선조 황희의 시조 《사시가(四時歌)》중 제 4련(聯)이다. 유종원의 한시를 우리말 시조로 옮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유종원의 시는 인적이 끊긴 적막속의 외로움이 부각된 반면 황희의 시조에서는 문맥상 외로움 보다 휴식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나 할까.
선시에서는 산·새·눈·강 같은 자연은 세계 질서를 인간 사회의 공동체 윤리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가 된다. 위의 시와 시조에는 산과 길을 배경으로 한 강에 삿갓 쓴 늙은이가 등장한다. 이는 사람과 함께 있는 자연, 자연과 함께 있는 사람이다. 즉 이 선시는 ‘나'와 나 아닌 사람과 자연·생활이 함께 공존하면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객과 사대부들에게 있어서의 낚시터는 사욕을 가지고 고기를 낚겠다는 장소가 아니다. 《어부가》들의 전통에서 보듯이 낚시에는 자연을 찾는 뜻이 우선한다. 나아가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에의 동참이다. 세상을 벗어나 세상과 대립되는 자연 (낚시터)이 아니라 세상을 포용하기 위해서 세상과 하나가 되는 이치를 터득하는 즐거움이 바로 낚시다.
‘눈 내리는 차가운 강(寒江雪)'은 도심(道心)의 이상향이며 때묻지 않은 순수 자연으로서의 탈정치적 공간이다. 이러한 자연이 바로 선적 자아가 안주하고자 하는 도덕적 완전성을 구비한 영역으로서의 자연이며, 이상적 공간으로서의 자연이다. 유종원의 선시 《강설》은 후일 송(宋)대 화가 마원(馬遠)이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라는 수묵화를 통해 그 공적하고 광활한 선적 의경과 연파호묘(烟波浩渺)한 선불교의 심미의식을 도형화했다.

 

柳宗元(773-819)
자는 자후(子厚). 산서성 운성 해주진 사람으로 당나라 중기의 걸출한 사상가이자 문인이었다. 진보적인 정치사상가로 왕숙문이 이끄는 영정혁신(永貞革新)에 참가했다가 실패하고 영주 사마(司馬)로 쫓겨갔다. 후일 유주 자사등을 지냈다. 영정혁신은 영정년간(805년)에 일어났던 혁명적 성격을 띤 진보적 정치개혁 운동이었다.
그는 한유(韓愈)와 함께 고문운동을 이끌었고 그의 문장은 한유와 이름을 나란히 했다. 그는 또 다수의 불교 선사들과 내왕을 했고 선리에도 아주 정통했다. 고문운동에서는 서한(西漢)시대 문장을 높이 평가했고 전통의 계승 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그의 산수시들 중에는 선의 본질과 계합하는 고요하고 쓸쓸하면서 차가운 선미학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인 선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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