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천 구 서울디지털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관용은 ‘차이’인정·존중서 출발 이웃종교 관용 전통 지키며 불교 정체성 분명히 해야 정보화·세계화 시대가 진행되면서 현대 사회는 종교적으로 다원화 되었다. 현재 한국에는 신자수로 볼 때 빅3에 속하는 불교, 개신교, 가톨릭 이외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등 7대 종교와 수백 개의 군소종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런 종교적 다원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지혜를 배우지 못한다면 갈등의 늪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종교적 갈등이 엄청난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중동문제, 아일랜드 분쟁, 코소보 사태 등이 보여주었다. 다원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자기와 다른 종교에 대해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1960년대부터 다원사회에 눈 뜬 종교들은 자기 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종교들의 입장은 절대주의, 포괄주의, 그리고 다원주의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절대주의는 자기 종교만 참되고 다른 종교는 그릇된 종교이거나 구원을 향한 인간적 노력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가진다. 포괄주의는 절대주의에서 변형된 형태로 자기 종교만이 유일한 종교지만 그러한 종교성이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는 융통성 있는 입장을 취한다. 다원주의는 자기 종교만이 절대적 게시의 결과가 아니고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구원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톨릭은 1962년 바티칸 제2공의회의 〈비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2에서 다른 종교들도 “인생문제에 해답을 주려고 애써 왔다”고 다른 종교의 노력들을 평가했다. 아직 포괄주의 입장이지만 다른 종교들과 대화의 길을 열었고 이후 가톨릭 교세는 전 세계적으로 크게 신장되었다. 개신교는 대부분 아직 절대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국제조직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990년 〈바르 선언: 다원성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기점으로 종교 다원주의 입장을 채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지 않고도 구원의 길이 있을 수 있으며 구원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울타리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조계종의 화쟁위원회에서 2011년 8월 23일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21세기 아쇼카 선언(초안)〉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은 “이웃 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웃종교와 불교는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동반적 관계”라고 주장한다. 얼핏 보기에 불교가 가장 앞서가는 것 같으나 아직 포괄주의 입장에 머물고 있다고 본다. 관용이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그러한 차이를 참아주고 존중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차이와 상호존중을 말하면서도 진리가 다르지 않다고 차이를 부정하고 있다. 만일 종교의 진리가 다르지 않다면 구태여 이웃 종교를 마다하고 불교를 믿을 이유가 있겠는가? 진리로 가는 길은 여럿일 수 있지만 종교들이 추구하는 진리가 같은지 다른지는 누구도 일방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현재 한국불교는 아쇼카 대왕과 같이 강한 입장에서 이웃 종교를 불교 안에 포용할 입장에 있지 않다. 개신교는 2013년 10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WCC 10차 총회를 통해 대대적인 한국 선교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불교는 이웃종교를 관용하는 불교의 전통을 지키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다종교 사회에서 불교가 이웃종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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