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가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연말 연시는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때입니다. 가는 해를 보내는 마음은 못다 이룬 일, 잘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으로 착잡해집니다. 또한 오는 해를 맞는 마음은 하고 싶은 일, 새로운 희망에 대한 설렘으로 들뜹니다. 이래저래 연말연시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불교도들은 가는 해를 참회로, 오는 해를 발심으로 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회는 이미 범한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숙과 발전은 참회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무수한 생명체들 가운데서도 인간은 유달리 참회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듯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반성할 수 있었기에, 인간은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참회를 해탈 수행의 중요한 항목으로 설하신 것도, 인간이 지닌 자기 반성 능력을 중시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기 반성력을 중시하고 적극 활용해야 성숙과 발전이 가능하며, 나아가 해탈이라는 최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도들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그 누구보다도 자기 반성에 솔직하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삶을 오염시켰던 모든 허물들을 고스란히 반성하여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거듭 거듭 다져야 합니다. 이러한 솔직한 자기 반성과 다짐은 그 자체로서 수승한 수행이 됩니다.
 
철저하고도 솔직한 자기 반성과 다짐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초석입니다. 그런 점에서 참회는 곧 발심으로 이어집니다. 발심은 새로운 삶의 희망에 눈뜨는 일인 동시에, 그 희망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굳건히 하는 일입니다. 해탈로 나아가는 자비와 지혜의 길에 눈뜨고, 그 길을 걸어가려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발심입니다.
 
지방에 있는 사람이 서울로 가려면 우선 서울로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와야 합니다. 또한 그 길을 따라 가보겠다는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길을 모르면서 서울 가겠다고 하거나, 길을 알아도 길 따라 갈 의지가 없으면서도 서울 타령을 한다면, 그것은 공염불로 그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모든 희망은, 그 희망에 대한 개안과 실현 의지를 요구하는 법입니다. 발심은 바로 삶의 올바른 희망에 대해 눈뜨는 일인 동시에, 그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을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는 일입니다.
 
불교에서 발심을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생이 지닌 최고의 희망인 해탈의 주인공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해탈로 나아가는 지혜와 자비의 길이 눈에 들어와야 합니다. 불만과 고통과 속박으로 이어지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길에서 헤매다가, 문득 지혜와 자비의 길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길 위에 올라서서 걸어가겠다고 하는 의지를 일으켜야 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먼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전거를 세웁니다. 그런 후 페달을 밟아 직접 자전거를 움직여주어야 목적지에 나아갑니다. 인생이라는 자전거를 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갈 곳을 향해 방향을 제대로 잡은 후, 그 쪽을 향해 실제로 운전해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기 마련입니다. 엉뚱한 길로 내달아 원치 않은 곳에 도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 과오들을 반성하지 않으면 제 길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정직한 반성은 실수와 착오를 성공의 거름으로 만들어 줍니다. 과거에 범한 잘못된 경험들을 반성하여 제 길을 잡는 토대로 삼는 것이 참회라면, 그러한 반성과 자각을 통해 제 길에 눈 떠 새 길 위에 올라서는 것이 발심입니다. 불교도들이 참회와 발심을 통해 인생을 지혜와 자비의 길 위에 올려놓고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지난 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참회거리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인간 관계, 가족, 직장, 사회에 걸쳐 참회할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특히 정치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더욱 정직하고 철저한 참회가 필요한 대목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우리는 솔직한 참회의 마음으로 경건해져야 합니다. 참회를 하지 않고 막연히 새해의 희망을 품는 것은 공허하고 기만적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정직하고 철저하게 참회하느냐에 따라 새해 희망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솔직한 참회 위에 우리는 새해의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개인과 사회를 정도(正道)에 올려놓을 수 있는 발심을 품어야 합니다. 분열과 차별과 불신과 증오의 행적을 참회하고, 화해와 관용과 신뢰와 자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발심을 수립해야 합니다. 솔직한 참회는 묵은 악업(惡業)을 정화시켜 줄 것이고, 희망의 발심은 밝은 정업(淨業)을 형성시켜 줄 것입니다.

주정산(대한불교천태종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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