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세차게 내린 후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일교차가 큰 계절엔 무엇보다 건강 관리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독감환자로 병원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오늘은 건강과 더불어 우리의 몸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우리의 몸은 비록 사대(四大:地水火風)로 이루어진 허망한 것이라고 하나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중생들은 흔히 내 몸을 내 것으로 간주해 술과 담배로 육신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심지어 남의 몸에 살상의 위해를 가하는 사람까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이는 육신에 대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살피지 못한 까닭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肉身)은 ‘법을 깨닫기 위해 받은 몸’입니다. 즉 불성이 내재돼 있는 미완(未完)의 그릇으로서 함부로 취급되어서도 안되거니와 이타심이 발휘되는 보살의 존재이므로 해침을 당해서는 더더욱 안되는 존재입니다.

육신은 비록 제 역할을 다하면 사대로 다시 돌아가지만 돌아가기 전까지의 육신은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수단’으로서 소중히 다뤄져야 합니다. 제 몸의 학대, 다시 말해 고행주의는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셨을 때 채택됐던 방법이지만 그것이 깨달음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 부처님은 고(苦)와 낙(樂)이 아닌 중도(中道)를 선택하셨습니다.

육신의 학대가 깨달음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신 부처님은 교단이 성립한 이후 병든 환자를 간호하는 간병(看病)을 최고의 복전이라고 강조하기도 하셨습니다. 육신은 다름 아닌 불성이 깃들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불자로서 온갖 병자를 보았을 때는 언제나 이를 공양하되, 부처님을 대하는 듯 해야 한다. 만약 도시, 벌판, 산림, 도로에서 병자를 보고도 구하지 않는 자는 경구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환자의 구병에 술과 고기가 필요하다면 계율에 막힘없이 제공을 허락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은 음식입니다.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닙니다. 맛은 또 다른 형태의 욕망일 뿐입니다. 출가수행자들이 공양하는 이유는 법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육체를 보존해야 하고 그 육체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영양을 공급할 음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소한의 양과 영양공급으로 육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스님들의 삶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들이라면 응당 스스로 자신의 몸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몸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세상에서도 큰 일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몸을 반듯하게 다스려야 무슨 일을 해도 성공리에 치러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육신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대해서 사회의 낙오자로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백유경’에 나오는 이 예화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조각을 잘 하는 장인이 있었습니다. 기술이 뛰어난 그는 궁중에 불려가 온갖 조각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너무나 많아 쉴 틈도 없었을 뿐더러 자유마저 제한 당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궁리 끝에 한 가지 묘책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아가 “폐하! 저는 더 이상 조각가로서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제 중요한 조각일을 하다가 눈을 다쳐 그만 실명(失明)하고 말았습니다.”

왕은 그의 조각 기술이 아까웠지만 할수 없이 궁을 떠나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을 하던 목수가 이를 보고 흉내를 내었습니다. 목수는 조각가가 거짓으로 장님 행세를 한 줄 모르고 실제로 자기의 두 눈을 송곳으로 찔러 장님이 되었습니다. 왕은 그에게도 궁에서 나갈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궁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장님이 돼서 밖으로 나오면 뭣하는가? 이제부터 자네는 평생토록 고생만 하겠네.”

세상에는 이 목수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무리한 다이어트 욕심으로 약물을 과다복용하거나 오용하여 목숨을 잃거나 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보도됩니다. 또한 외모를 가꾸려 성형수술을 했다가 낭패를 보고 있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몸은 불성이 들어 있습니다. 바꿔 말해 우리 몸은 ‘작은 법당’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주행위야말로 성스러운 법당을 오염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며 각종 이기적 욕심의 분출은 법당을 욕보이는 배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스스로 몸을 해하거나 다른 이에 의해 해침을 당하는 것 역시 법당을 파손시키는 중대한 행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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