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확의 계절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농촌에서는 한 해 동안 농사지은 과실을 거두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거름 주고 김을 매는 등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얻어 낸 결실이라서 남다른 기쁨이 함께 합니다. 풍성한 수확은 궂은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폭염이 내리 쪼이거나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개의치 않고 논과 밭에 나가 할 일을 묵묵히 해낸 농부들. 그들은 이제 빼곡히 영근 과실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다. 반면 허영과 사치를 좇으며 궂은 일하기를 기피했던 이들은 수확의 기쁨을 모른 채 사회 속에서 더욱 소외되고 있습니다.

우리 조직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아무리 고되고 궂은 일이라 할지라도 몸소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설 때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갖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신망받는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궂은 일에 앞장선다는 사실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대부분 기피하는 일을 그들은 오히려 ‘내 일’처럼 앞장섭니다. 보통 사람들과 지도자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도자는 내 일과 네 일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처리하는데 반해 보통 사람들은 내 일과 네 일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가령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져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보통 사람들은 미화원이 할 일이라며 그냥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회사원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는 임원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에게 회사의 일이란 네 일 내 일이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손을 조금 더럽혀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자체가 시간으로나 인력으로나 괜한 낭비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사람들로부터 신망 받는 요인입니다.

신망은 행선(行善)을 닦을 때 쌓아집니다. 한 가지 행선을 닦으면 백가지 악을 깨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행선이란 선행과 같은 말로서 항상 대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를 취함을 일컫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말과 마음과 행동으로 행선을 쌓으면 천상계에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궂은 일을 한다는 것은 행선을 쌓는 행위입니다.

조선시대의 대학자 이율곡과 관련된 일화입니다. 그는 어느 날 몸소 대장간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 했습니다. 농기구를 만드는 궂은 일 따위는 상공인에게 시킬 일이지 대학자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제자들이 율곡을 찾아가 만류했습니다. “선생님! 제발 궂은 일은 아랫사람들에게 맡기시고…” 이에 율곡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라의 산업과 기술의 발전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농기구 하나라도 제 손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하느니.” 제자들은 스승의 깊은 뜻을 알고 율곡을 도와 농기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기구를 재료값만 받은 채 농민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권위와 위엄만 앞세우는 다른 학자와 달리 동네에서 농민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면 궂은 일도 마다않는 율곡의 모습에 농민들의 존경심은 더해졌습니다.

궂은 일과 관련해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느냐 아니면 방관자로 있느냐는 나중에 직장에서의 성공여부로 판가름납니다. 다시 말해 궂은 일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의 성공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이 내려지는 이유는 대부분 알게 모르게 궂은 일과 관련성이 깊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내 일 네 일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일을 내 일처럼 처리하는 사람의 평판은 좋습니다. 반대로 자기 일에 한해서만 몸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평판은 별로 좋지 않은 게 인간 사회의 정황입니다. 특히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그리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평판은 더욱 좋아지게 마련입니다. 또한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궂은 일에 묵묵히 앞장선다면 그는 두터운 신망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옥야경〉에서 일곱 종류의 아내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며느리와 같은 아내’에서 “공경과 정성을 다해 어른을 받들고 겸손과 순종으로 남편을 섬기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궂은 일에는 자기가 나서서 책임을 지고 남에게 베풀기를 가르치고 착하게 살기를 서로 권하며, 마음이 단정하고 뜻이 한결같아 조금도 그릇됨이 없다. 아내의 예절을 밝게 익혀 손색이 없으니 나아가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물러나도 예의를 잃지 않으며 오로지 화목으로서 귀함을 삼으니 이것이 바로 며느리 같은 아내인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궂은 일에 나서서 책임을 지는 아내야말로 가장 좋은 아내의 표본이라는 것입니다.

궂은 일에는 역할분담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그 누군가 더러움을 치워주는 수고를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궂은 일이란 곧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숭고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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