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실천하는 노인 무료급식소 ‘자비의 집’


사진설명 : 자비의 집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배식 중인 자원봉사자들.

2006년 12월 19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미아동 자비의 집. 점심식사 하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노인 무료급식소인 자비의 집 식당에서는 음식 준비가 한창이다. 대여섯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1백 명 이상 거뜬히 먹을 양의 밥과 반찬, 국 등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11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급식까지는 두 시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정작 자원봉사자들은 쉴 틈이 없다. 또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두 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앉은 노인들도 진득하게 버텨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지난 1994년부터 자비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는 임순자(74, 평창동) 씨는 13년의 봉사 경력을 지닌 최고령 봉사자. “다른 생활이 힘들면 못하지. 시간이 남으니 여기 와서 봉사하는 것 뿐이야. 하루는 내가 다니던 사찰의 스님이 자비의 집을 소개하면서 일손이 부족하니 그곳에 가서 돕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 보더라고. 그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지.”

하루 예닐곱 명씩 2백여명의 봉사자들이 번갈아 가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생업 때문에 나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아서 봉사자들은 오히려 줄고 있는 추세. 불교계 복지기관임에도 불구 교계 쪽에서의 지원도 없고, 후원자들도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임 씨는 “내가 나오면 이곳 노인들이 반가워하고, 식사 맛있게 하시는 걸 보면 보람을 느껴. 나도 점심식사 해결할 수 있으니 좋고, 몸과 마음이 따르는 한 봉사활동은 누구나 펼칠 수 있어”라고 봉사가 그리 어렵지 않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오랜 경력을 지닌 임 씨와 달리 친구 소개로 자원봉사 차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는 홍 모(50, 미아 3동)씨는 “여기서 봉사하는 분들과 같이 자비로운 마음이 뒷받침되어야 이런 활동도 펼칠 수 있는 것이지,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힘들 것 같다”면서 “내 경우 아이들 문제 때문에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날 식사메뉴는 쌀밥, 김치, 두부조림, 시금치, 오징어 국. 풍성하게 차려진 식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식사하는 70~80대의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서 “그저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진설명 : 봉사자들이 장애인과 노인들에게 전달할 팥죽을 비닐봉지에 담고 있다.

반찬배달이 계획된 이날, 봉사자들은 동지를 앞두고 팥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펄펄 끓인 팥죽을 비닐봉지에 일일이 담아 새지 않게 잘 묶었다. 안양·도봉·마포·정릉에서 거주하는 장애인과 노인 등 140가구에 전달하기 위해 비닐봉지에 팥죽을 담는 과정은 40여분동안 진행됐다. 


사진설명 : 지체장애자인 딸과 단 둘이서 생활하고 있다는 한 할머니는 팥죽을 건네받고 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팥죽을 옮기기 위해 대기 중이던 차량봉사자 이 모씨 부부는 “드러내지 않고 봉사하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가 하는 차량지원은 봉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면서 “재개발 문제 때문에 이런 활동마저 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이 싣고 온 팥죽은 마포 성산종합사회복지관 복지관 직원을 통해 각 가정에 전달됐다. 복지관에서 팥죽을 직접 건네받은 한 할머니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결식노인과 아동을 위한 상설무료급식소인 자비의 집은 지난 1993년 건립돼 무료 급식을 비롯해 소녀가장, 불우이웃의 자립을 돕기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곳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식사를 제공하며, 오후에는 초등학생 30명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교를 연다. 또 월·화요일에는 장애인, 독거노인 가정 등 총 240여 가구에 반찬배달, 금요일에는 침술 봉사, 매달 넷째주 월요일에는 미용 봉사 등을 하고 있다.

현재 자비의 집은 일손부족도 문제지만, 주변 일대가 재개발 단지로 지정돼 개발이 추진 중이어서 헐릴 상황에 처해 있다. 후원금이 턱없이 부족하고, 불교계의 지원도 없어서 한 끼 식사로 즐거워하던 노인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던 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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