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여름의 중간달이다. 중하(中夏)라 한다. 창포로 머리감는 단오절이 있다 하여 포월(蒲月)이라고도 했다. 매실이 익는다 하여 매월(梅月)이요, 석류꽃이 핀다 하여 유화월(榴花月)이다. 5월의 24절기는 망종(芒種)과 하지다. 망종이란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릴 시기라는 뜻이다. 하지는 낮이 가장 긴 절기로, 하지 전에는 모심기가 모두 끝난다. 5월에는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모내기를 시작한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고도 한다. 어촌에서는 멸치 어장이 형성되고, 강화 등에서는 웅어잡이가 끝나고 황복잡이가 시작된다. 오농육숭(五農六崇)이라 하여 오월에는 농어가, 6월에는 숭어가 제맛이라는 설도 있다.

5월의 세시명절은 단오(端午)다. 단오의 기원은 중국 고사에서 비롯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의 유래는 명확치 않다. 삼한 중 마한에서 5월에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삼한 시절부터 농사와 연관된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에서는 5월 5일에 오묘(五廟)에 제사지냈다고 하며, 백제에서는 5월에 천신과 오방신, 시조묘에 제사지냈다고 한다. 5월에 농사와 연관된 풍속이 성했고, 단오에는 조상 제사를 모셨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정초, 한식, 단오, 중추를 조상에 제사지내는 명절(節祀)로 여겼다. 한편 단오는 북방 민족의 태양축제라는 설이 있는데, 그네, 격구(擊毬), 석전(石戰) 등 숭무의 기풍이 담뿍 배어 있는 풍속이 많이 전해진다.

5월 5일 단오는 양수가 겹치는 날로 중오(重五), 단양(端陽)이라고도 했고,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 하여 천중가절(天中佳節)이라고도 했다. 또한 단오를 수릿날이라고 하는데, 수리취 나물로 떡을 해먹는데, 그 모양이 수레와 같이 둥글다 하여 붙인 명칭이라는 설도 있고, 수리의 어원이 높을 고(高), 신(神)을 의미하므로 높은 신이 하강하는 날이라 하여 수릿날이라는 설도 있다.

5월 단오에는 전국 각 지역에서 마을이나 읍치(邑治)의 공동행사가 치러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릉의 단오제다. 강릉의 단오제는 대관령 서낭에 대한 제사인데, 그 행사의 유래에 대해 김유신장군설, 신라말 승려 범일(梵日)국사설 등 여러 가지가 전한다. 경상도 군위에는 김유신장군 사당이 있었는데, 단오날 아전들이 역마를 타고 기를 들고 북을 울리며 신을 맞이하여 촌항을 다니며 놀았다고 한다. 강원도 삼척에서는 오금으로 만든 비녀(烏金簪)를 작은 함에 담아서 관아 동쪽에 숨겨놓았다가 단오날 아전들이 꺼내 제사 지내고 이튿날 도로 감춘다고 한다. 경상도 경산 자인에서는 한장군(韓將軍)에 제사 지내고 여원무(女圓舞)를 추며 노는 한장군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경상도 영산에서는 문호장을 기리는 문호장굿이 전승되고 있다. 이들 행사의 공통점은 대개 그 기원이 고려 이전까지 소급되며, 고을 수령이나 양반들이 치르는 행사가 아니라 아전 등 지역의 향리들이 지내는 행사라는 점이다. 이러한 행사는 고을 수령도 막지 못할 만큼 전통이 깊고, 향리들의 강력한 지방권력을 짐작하게 한다.

단오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그네, 씨름, 격구, 석전, 수박희(手搏戱), 창포물로 머리감기, 단오부채 선물하기, 단오부적, 수리취떡, 애호(艾虎),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등이 있다.

그네뛰기는 특히 5월 단오의 대표적인 놀이로 한자로는 추천(鞦韆), 반선희(半仙戱) 등으로 불린다. 그네의 기원은 분명하지는 않다. 단지 중국에서 한식에 놀았던 그네뛰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단오의 놀이로 변한 것은 분명하다. 고려 때부터 그네는 각종 기악백희(伎樂百戱)에 포함된 화려한 상층의 놀이였다. 고려 말기부터는 민간에서도 성행하였는데, 15세기 한양 한복판 종가 거리에 그네터를 설치하고 도성을 남북패로 나누어 내기를 하였다. 이 때는 장안의 부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단오에 그네를 뛰면 한여름에 모기에 물리지 않고 더위도 타지 않는다는 속신도 있어, 그네를 뛰면서 “5월 단오에 모기야 물러가라”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씨름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나타나는 유구한 전통의 놀이이자 격투기였다. 조선시대에 씨름은 군사훈련의 한 종목이었고, 외국사신을 위한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씨름은 단오, 백중, 추석 등 큰 명절에 하던 놀이였다. 조선시대 단오 씨름은 개성 만월대, 한양 남산 왜장(예장동), 북악산 신무문 등에서 벌어졌다. 또한 지역에서 씨름은 공동체의 신위 앞에서 하던 제의 놀이기도 했다. 경남 합천에서는 정견신모(正見神母) 사당에서 제사를 뜨리고 씨름으로 자웅을 가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정견신모는 가야산 산신이고, 정견사(正見祠)는 해인사 앞에 있었다. 한편 평양 영명사, 김천 직지사, 달성 유가사 등은 명절 씨름대회가 열리던 대표적인 절이었다. 김천 직지사에는 구경꾼이 수천명이나 몰려들었다고 한다.
석전은 패를 나누어 개천이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돌을 던져 먼저 달아나는 쪽이 지는 놀이다. 때로는 단순한 놀이에서 벗어나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격해지기도 했으나 나라에서도 금하지 못했다. 조선 중기 이후 석전은 주로 정월 대보름에 하는 놀이로 바뀌었다. 왜란 때 돌팔매질로 왜병을 물리친 설화도 많이 전해진다. 격구는 일종의 마상무예(馬上武藝)로 말을 타고 채를 이용하여 나무공을 구문(골대)에 넣는 경기다. 무관들의 무예훈련용이기도 했으며, 점차 민간에 전파되어 장치기로 민속화되기도 했다.
단오부채는 여름맞이용으로 왕이 신하들에게, 그리고 신하들은 일가친척에게 나누어주는 풍속이었다. 부채는 경상, 전라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므로 이를 진상받아 두루 나누어주었다. 겨울에 달력을 하사하는 풍속과 더불어 여름, 겨울맞이용 풍속이었다(夏扇冬曆). 단오부적은 대궐이나 신하들의 집 문설주에 붙이는 붉은 부적으로, 악한 기운을 소멸케 하려는 행위였다. 민간에서는 절에서 단오부적을 부녀자가 받아와 집안 방문 위나 부엌 벽에 붙였다. 단오부는 치우천황의 무서운 형상으로 악기를 몰아낸다는 의미에서 치우부적이라고도 했다.

부녀자들은 창포물(창포탕)에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목욕을 하고, 홍색과 녹색의 새 옷을 입고, 머리에 창포잠을 꽂는 단오장(端午粧) 치장을 하였다.
5월의 세시풍속에서 불교 관련 내용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단오 씨름과 사찰, 민간의 단오부적 공급처, 강릉단오제나 가야산 정견사와 같이 지역공동체와 연관된 설화 등이 보이지만 5월이나 단오 풍속에 불교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은 것같다. 4월 초파일과 7월 백중(우란분절)에 불교 행사가 집중되고, 그 사이 농번기 민간의 풍속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것은 전통사회와 조선시대 불교의 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철승(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금강불교 325호>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