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찌는 듯한 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휴가를 떠납니다. 이러한 때 우리의 처신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내 몸을 어디에 두고 처신할 것인가? 우리는 가끔 이러한 의문에 빠져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주변 상황이 갈등 속의 대립 구도에 놓여 있거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위기 국면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강요받게 될 때 누구나 한 번쯤 이 같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은 없습니다. 계절과 기온에 따른 쾌적한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디에 거처하든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며 살아야 합니다. 수백 억을 가진 대저택의 사람이라도 해결해 나가야 할 고민이 있습니다. 고민은 고실광대에도 있고 다리 밑에도 존재합니다.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고민이 있는가 하면 판자촌 촌로에게도 고민이 주어집니다.

고민은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거처가 분명해야 합니다. 더우면 더위를 피하는 거처를, 추우면 추위를 피하는 거처를 만들어야 합니다.
토정 이지함(1517~1578)은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예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풍수학자가 아닙니다. 워낙 괴상한 거동을 잘해 예언과 술수에 관한 일화가 많을 뿐 그는 도끼를 허리춤에 차고 산 속으로 들어가 손수 관솔을 따다가 방 안에 불을 밝히고 경사자집(經史子集; 경서 사서 제자 문집 등의 중국 서적)을 통달한 정통 지식인이었습니다. 토정은 배를 잘 젓기로도 소문났습니다. 넓은 바다를 평지같이 갈 뿐 아니라 나라 안의 산천을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바다에서 놀다가 한 노인이 배를 타고 천천히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의 거동을 이상하게 여긴 그는 급히 배를 모아 쫓아갔으나 있는 힘을 다해도 따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돌아보고 웃으며 “그대의 배 젓는 솜씨가 겨우 그 정도인가? 내가 배 젓는 법을 가르쳐 주지. 광풍이 노도하여 배를 휩쓸고 하늘을 들먹거릴지라도 끝내 재난을 당하지 않고 일순간에 천리를 갈 수 있네.”하는 것이었습니다. 토정은 노인이 일러준 대로 작은 배를 타되 배의 네 귀퉁이에 큰 표주박을 붙들어 매고 다녔습니다. 과연 세 번이나 제주도에 갔었는데도 한 번도 풍파에 휩쓸리는 재난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은 이 같은 작은 지혜의 발견에 있습니다. 표주박은 천하를 주유하는 이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온갖 위험을 능청스럽게 넘기는 상징으로도 표식됩니다. 이 표주박이 거친 바닷물을 달래는 도구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노인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거처를 분명히 하라는 것은 다름 아닙니다. 토정이 바다에 있었기 때문에 배의 균형을 잡아 줄 표주박을 알게 된 것이지 육지를 탐로하고 있었다면 기존의 표주박으로만 소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 거처가 아닌 곳을 내 것인 양 거처로 삼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발을 들여놓게 되면 곧 길 잃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거나 정체가 드러나 사람들로부터 망신을 사게 됩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와 수많은 재화가 보장된 자리라 하더라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면 욕심을 내서 안됩니다. 반대로 가난과 질병이 득세해도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이 세상 한 칸 초가인들 즐겁지 않으리. 이 세상, 이 세상 누더기 옷을 걸친들 또한 무엇이 나쁘리. 염라대왕의 사자가 와 맞아가게 되면 비록 이 세상에 살고자 한들 어찌 될 수 있으리.’

성현(成俔)의 수필집 ‘용재총화’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조선시대 때 법명도 이름도 아닌 계승(鷄僧)이라 불린 스님이 불렀다 합니다. 계승은 닭소리를 내며 대중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소일했습니다. 그는 서민들이 북적거리며 살고 있는 저자거리를 자신의 거처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고 ‘용재총화’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바로 알아 거처를 정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대한 일입니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곳이라 하더라도 그 곳이 내 거처라면 응당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숫타니파타’에서 이런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과 생각하는 바가 그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는 사람, 남들이 존경해도 우쭐대지 않고 남들이 비난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남이 존경해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곳이 우리가 거처해야 할 집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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