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년 물속에 잠든 신선·용
유아적 맹목주의로 과소평가
고급 관광 콘텐츠로 개발해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불리는 관광산업의 진흥과 관광수입의 증대를 위하여 나라마다 관광자원의 발굴과 관광객 유치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지자체들 사이의 유치 각축도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관광산업의 흥폐여부는 보유한 관광자원의 콘텐츠 내용과 질 그리고 운영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지금은 의식주를 포함한 역사 문화 자연 등 삶의 모든 영역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시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이 살아온 모든 흔적이 일단은 관광자원이 된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더 설득력 있게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콘텐츠를 개발하느냐다. 소위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그것이다.

당나라 때의 문인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實銘)〉에는 “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龍”이라는 말이 있다. “산이 높다고 해서 명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신선이 있어야 명산이 되고, 물이 깊다고 영험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용이 있어야 영험해 진다”는 말이다. 자연에 인문적 요소가 결합된 고급 관광의 핵심을 절묘하게 표현한 문구라고 생각된다.

로마에 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화 ‘로마의 휴일’을 연상한다. 콜로세움, 포로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 진실의 입, 베네치아 광장, 트레비 분수 등은 로마의 신선이고, 용이다. 이 용과 신선들은 본연의 가치도 있지만, 영화 ‘로마의 휴일’을 통하여 세계인의 뇌리에 더 깊이 각인됐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데이트 한 장소들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관광객에게 회자된다. ‘로마의 휴일’이 로마의 신선을 세계인의 신선으로, 로마의 용을 세계인의 용으로 승천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과거가 살아 숨 쉬는 타임캡슐이고, 노천박물관이라고 한다. 경주는 예술로 승화된 종교적 열정의 성소 남산과 낭산, 불국사와 석굴암, 첨성대를 비롯한 나정, 포석정, 계림, 임해전지, 대릉원을 비롯한 수많은 능묘와 궁궐터 등의 세계문화유산과 불교관련유적들이 남아있는 신라문화의 집결지이다. 그 속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우리의 삶과 지혜를 함축한 주옥같은 전설과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이것들이 다 경주라는 산에 있는 신선이요, 경주라는 천년의 물속에 깊이 잠수해 있는 용들이다.

그런데 로마와는 달리 경주는 세계인들에게는 고사하고 우리 자신에게 진정 신선과 용이 있는 곳인지 반문해 보아야 할 현실에 처해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타임캡슐 속의 신선과 용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콘텐츠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고, 운영에도 문제가 있음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 소중한 우리의 자원들을 이무기나 밀랍으로 만든 신선 모습 정도로 방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비하는 외세지배의 후유증에 의한 집단적 트라우마와 서구 추종으로 형성된 천박함의 합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것을 기준으로 자신의 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유아적 맹목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의 신선과 용을 세계인에게 소통시킬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이면서도 차원 높은 콘텐츠의 개발을 위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과감한 시도를 해야 할 때이다. ‘신라의 달밤’을 ‘로마의 휴일’ 수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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