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인 6월인데도 시원한 그늘을 찾게 되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후텁지근한 날씨는 세상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 반열에 있는 분들이 하루 아침에 명예와 권위를 잃는 일이 줄을 잇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일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짐작하시듯 살인, 수뢰 등 믿기지 않는 일들이 현실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1912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인생의 길’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바르게 사는 길이 비록 힘들다 하더라도 그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보다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돌아가지 않고 조그만 나무다리를 건너다가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물에 빠지듯이 우리들은 언제나 악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예나 지금이나 지혜롭지 못한 처신에 의해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에게 경구가 될 수 있는 예리한 지적을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이 경구에서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지혜로운 삶이란 올바르게 사는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설픈 지략과 꾀와 수단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위기를 돌파하려는 자세는 옳지 못합니다. 당장의 안위를 취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한 행복을 안겨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진정성이 있고 절실한 가운데서 얻을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양우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지혜를 구하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지혜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지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낙담하고 있을 즈음 어떤 사람이 현자(賢者)를 찾아보도록 권유하였습니다. 이에 현자를 찾아간 젊은이는 지혜를 알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현자는 젊은이를 데리고 연못으로 들어갔습니다. 연못은 점점 깊어졌고 마침내 목에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머리가 완전히 물 속에 잠기고 나서 한참 후에 젊은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온 현자는 “물 속에서 가장 절실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였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현자는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물 속에서 공기를 찾듯 그렇게 열심히 갈구하면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일세.”

지혜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절실히 갈구하고 염원할 때 하나 하나씩 체득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전해주고 있는 일상 속에서의 삶의 지혜란 백 년 천 년 갈고 다듬어져 나온 것입니다. 때로는 위기 속에서 또는 절망 속에서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한 고난과 역경이 만들어 낸 해법이므로 오늘날에도 유용하게 적용되며 빛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쉬지 않습니다. 늘 정진하고 노력합니다. 올바른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내일의 희망과 행복을 수놓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혜는 꾸밈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실하며 진정성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공자도 논어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혜를 어디에서 구하시겠습니까?

큰 산의 여러 약초는 그 산마루에 나되 주인이 없고, 환자를 따라 여러 병을 다 고칩니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지혜의 약을 가지고 시방 천하 사람의 생로병사를 고쳐줍니다. 불교를 일러 지혜의 종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살은 신통력이 아닌 지혜로써 중생을 구제합니다. 여러분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보살의 삶을 살고자 하는 원력이 있다면 경전읽기를 등한시해서는 안됩니다. 경전이야말로 지혜의 보물창고입니다. 아무리 학력이 낮고 지식이 떨어진다 해도, 혹은 팔 다리가 자유롭지 않은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경전을 독송하고 정진한다면 세상에서 으뜸가는 지혜로운 이로 거듭날 것입니다.

옛날 과수원으로 성공한 부농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게으른 세 아들이 걱정되어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들 몰래 포도밭에 진기한 보물을 묻어 놓았다. 내가 죽거든 보물을 찾아서 나눠 가져라.” 부농이 죽자 세 아들은 제각기 삽과 괭이를 들고 보물을 찾기 위해 드넓은 포도밭을 쉴틈없이 파헤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파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 아들이 실망을 금치 못한 채 몇 달이 흘러 포도밭에 주렁주렁 알찬 포도가 탐스럽게 열렸습니다. 밭이 아주 잘 갈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세 아들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보물이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경전을 보는 것은 농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농부가 경작을 한다면 불자들의 경작이란 경전을 열심히 보고 실천에 옮기는 일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지혜의 농사인 것입니다. 경전공부를 통해 풍작을 거두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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