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여름이 온 듯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서는 모내기로 한창 분주합니다. 그런데 한 해 농사의 시작이랄 수 있는 모내기가 첫 단계부터 순조롭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상 기온의 영향 탓으로 모판이 엉망이 되거나 병에 걸려 ‘모내기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땅에서 배워 온 지혜에 익숙해진 우리 농부들은 금방 원인을 알아채고 새로운 모판을 만들고 차질없이 모내기를 하기 위한 논갈이에 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실패가 무엇인지 여러 차례 그 해의 농사를 통해 겪었습니다. 농부들에게 있어서 실패의 경험은 새로운 희망과 도전을 향해 의욕을 불태우게 할 뿐 낙담과 절망을 안겨주지는 못하는가 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숱한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음 인생의 행로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실패가 낙담과 좌절로 이어진다면 그대로 절망적인 삶이 될 것이며, 반대로 실패를 거울 삼아 새로운 도전과 야망을 갖는다면 희망의 나날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패는 두려움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실패하지 않으려면 먼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성취의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기 전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이 두려움을 제일의 장애로 생각하셨습니다.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가 깨끗하지 못한 이, 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이, 탐욕으로 심한 애욕을 느끼는 이, 원한을 품은 이, 악의를 품은 이, 마음이 침울하고 무거운 이, 마음이 들뜬 이, 의혹에 휩싸인 이,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는 이, 불안으로 몸이 굳은 이,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추구하는 이, 게으르고 나태한 이, 산만한 이, 어리석은 이, 그런 이라면 숲 속의 고독한 삶이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그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가 공포와 전율을 피하지 않은 채 극복해 내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수행이력처럼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1903년 12월 8일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DC를 가로지르는 포토맥강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비행가인 사무엘 랭글리 박사의 역사적인 비행실험을 지켜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비행기 개발을 추진했던 랭글리 박사는 두달 전 실패했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보완하였고 이날 만큼은 성공을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발사대를 출발하여 그대로 포토맥강에 추락해 버렸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말똥가리가 난파되었다’고 하였고 뉴욕타임스는 ‘사람이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앞으로 천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조소했습니다.

이로부터 9일 후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호크 해변에서 라이트 형제가 비행실험을 했습니다. 동네 사람 다섯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낮 12시 정각 라이트 형제가 날린 비행기는 59초동안 260미터를 날아감으로써 동력비행에 성공했습니다.

불자여러분!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비행실험을 한 랭글리 박사는 실패했는데, 자전거포 주인의 신분으로 있었던 라이트 형제는 어떻게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 이유와 원인이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랭글리 박사는 정부 지원과 국민적 관심에 따른 내면적 두려움을 어쩌지 못했고, 라이트 형제는 동네 사람의 천진한 호기심과 당찬 포부가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곧 두려움에 있습니다.

고 정주영 씨를 비롯한 경제계 거인들이 과거 50~60년대 척박했던 환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경제신화를 일궈냈던 이면에는 그들이 모두 두려움없이 당당히 현실과 맞섰다는 것입니다. 마음 한켠에 조금이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들은 오늘날과 같은 신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님들이 여러분에게 늘 ‘용맹정진’하라고 말씀하시는 의미를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용맹정진이란 여러분 마음 속에 장애가 되는 두려움을 없애라는 의미와 상통합니다. 그러므로 용맹정진에는 좌절이나 포기, 나아가 후퇴란 없습니다. 여러분의 내일을 건강하고 밝게 가꾸어 나가는 묘책은 바로 두려움을 없애는데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진정 맑은 믿음을 일으켜 다 함께 기뻐하는 일을 도모하게 되는 법입니다. 지혜의 눈뜸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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