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스승의 날이 들어있는 5월입니다. 평소 흠모하며 존경하는 가까운 스승을 찾아 인사는 드렸는지요. 인생에서 스승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큽니다. 스승이란 내 자신이 유혹과 방심으로 인해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 위험에 처할 때 나를 바로 잡아주는 등대이자 지남(指南)입니다.

요즈음 신문 방송 등을 통하여 ‘멘토’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멘토’는 정신적 또는 영혼의 스승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입시생을 상대로 동문 출신의 선배가 일대 일, 혹은 다대 일 멘토가 되어 명문대 진학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어느 상업성 교육단체는 올 여름방학을 대비해 ‘멘토링 기숙캠프’등을 기획해 놓고 벌써부터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멘토링 기숙캠프의 멘토들은 대부분 명문대 재학생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주관단체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이 멘토링 기숙캠프는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멘토의 역할은 공부에 관심도 없고 인생 목적도 없는 학생들을 상대로 자기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목표의식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른 성공담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행복입니다. 어떠한 스승을 만나느냐는 문제는 인생의 행로와 직결됩니다. 때문에 역대 위인들의 전기를 살펴보면 성공 이면에는 스승의 커다란 가르침이 숨어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출가를 단행하시자마자 처음 시도한 일이 바로 ‘스승 찾기’였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박가바’ ‘알라라 칼라마’ ‘웃다카 라마푸트라’ 등의 선인들을 찾아 가르침을 구했으나 만족할만한 대답을 듣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스승 찾기를 포기한 부처님은 혼자만의 처절하고 고독한 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마침내 대각을 성취하셨고 이를 중생들에게 가르치심으로써 삼계의 ‘큰 스승’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여러분이 반드시 주목하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스승[가르침]을 구할 때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부처님께서 세 선인을 찾아 비록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가르침을 구할 때 오체투지의 하심으로 하셨습니다. 자신을 모두 비우고 간절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구했던 것입니다.

불교 전법의 역사는 이같은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에 들어와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령 초조 달마대사에게 가르침을 구하던 이조 혜가대사의 구도심은 교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추운 겨울 눈 속에서 자신의 팔을 잘라 법을 청했던 혜가의 ‘스승 찾기’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지 그 가르침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하기 이전 이미 모든 학문을 섭렵하신 분입니다. 당시 최고의 교과서로 불렸던 〈우파니샤드〉를 정복하였고 이후 더 이상 배울 학문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필요한 학습과정을 모두 이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누구와 논쟁을 해도 쉽게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이를 내색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하심으로 일관했습니다.

이같은 마음자세는 〈육방예경〉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경에 의하면 제자는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방법으로 스승을 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첫째, 필요한 물건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승의 곤궁과 빈천은 제자들이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둘째, 늘 예경 공양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면 가르침마저 소홀히 하는 경우를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존경하여 우러러 받들라는 것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선택해 듣는 것이 아니라 내 폐부를 찌르고 가책을 느끼게 하는 경구들마저 놓치지 말고 정진하라는 경책입니다.

넷째, 가르침이 있을 때에 순종하여 어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인 다섯 번 째로 들은 법은 잘 지녀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침이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가운데에서도 교만한 마음을 여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행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이행하는데 교만심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멘토’와 그 상대인 ‘멘티’가 서로 교만으로 충돌한다면 발전과 성과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늘 하심으로 대하다보면 세상 모두가 나의 스승이란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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