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한인 사회는 미국인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식을 언론이 전하고 있습니다. 한 한국계 경찰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성 매매업을 비호해 주고 그 대가로 성 향응과 뇌물을 받은 것이 적발된 것을 계기로, 한국을 성 매매업의 본산지처럼 간주하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백인이 미국의 주인이라고 하는 인종주의가 암암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은, 미국 사회의 그늘은 유색 인종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사회의 음지와 모든 범죄의 주역은 흑인이나 라틴계 혹은 아시아계 사람들일 것이라는 편견을 사실로 믿고 싶어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예외 없이 유색인종이었던 것도, 이러한 미국 사회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미국 사회의 인종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지라도, 한국인들이 성 매매업의 당사자가 되어 비난받는 일이 생겨난 것은 분명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한국인들의 높은 문화적 자긍심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직업의 윤리성에 대한 교훈을 음미해야 합니다.

직업의 윤리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직업이 윤리적인가를 문제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직업이든지 그 직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를 문제삼는 것입니다.

근대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후에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는 표어가 직업관의 상식처럼 굳어졌습니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직업의 귀천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귀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귀족으로, 천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민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이러한 직업관은 신분차별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조선시대만 해도 사·농·공·상의 직업 차별이 곧 신분차별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신분차별과 연관시켜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직업관은 분명 불합리한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직업 평등관은 인간차별을 깨뜨리려는 인간 평등관의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또한 근대 산업사회를 주도하는 직종이 고대 사회에서는 천대받던 공업과 상업이었다는 점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직업 평등 선언의 배경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직업 선택이 소득 기대에 따라 결정됩니다.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신분 구별이 생겨납니다. 시장이 주도하는 경제 논리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신분 질서가 형성된 것입니다. 비록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는 직업에 따른 신분 차별이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소득이나 권력 여부에 따라 직업에 의한 신분 차별 현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직업을 자기 실현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소득 여하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점에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직업을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은 대개 소득 수준이나 권력 정도를 기준으로 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들의 직업 선택 기준은 사실상 소득 수준에 의해 결정되며, 직업에 대한 평가 역시 경제적 소득을 기준으로 그 우열이 결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직업 윤리라는 것은 직무에 대한 성실성이나 적법성이 그 내용이 됩니다. 어떤 직종에서 요구하는 근로 수준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는가, 혹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직업인가 하는 것이 직업 윤리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불교는 직업을 다른 관점에서 봅니다. 부처님에 의하면, 직업은 한 개인의 마음과 행동과 언어의 수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직업 환경은 개인의 인격과 삶의 질에 커다란 변수가 됩니다. 예컨대 거짓말을 자주 해야 이익이 커지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언행과 마음이 거짓말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반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언행과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자비심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부처님은 직업이 인간의 언행과 마음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력을 주목하여, 직업 선택의 문제를 해탈 수행법의 하나로 마련하셨습니다. 팔정도 수행의 하나인 ‘올바른 생계(正命)'가 그것입니다. 해탈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사람이라면, 가급적 직업도 자비심과 지혜를 증장시키는 데 기여하는 유형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인신매매나 독극물, 마약, 무기 매매 등과 같이 생명을 해치는 것과 직결된 직업은 피하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본다면, 돈만 벌면 어떤 직종이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법만 위반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직종이 인간과 생명체에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성과 마약 사업의 번창은 직업 자체의 윤리성을 중시하라는 부처님의 교훈을 새삼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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