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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원짜리 ‘불교지침서’
  • 공종원 전 불교언론인회 회장
  • 승인 2011.04.0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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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일부 불교인들의 충심
다시 한번 되새기자

28년 만에 강북 생활을 접고 강을 건너 남쪽으로 이사를 했다. 나이가 들어 이사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대단한 고통이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막상 이사를 하고나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사하는 곳이 같은 서울이라 거리상으로 대단히 먼 곳은 아니지만 생활권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 자체가 대단한 스트레스다. 또 이삿짐을 싸고 차에 실어 옮긴 후 다시 풀어놓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게 신경을 쓰게 한다. 비용관계로 포장이사대신 일반이사를 하게 되니 짐 싸는 일부터 하나하나 모든 과정이 신경을 곧추세우게 한다.

이삿짐을 싸다보니 옷이랑 부엌살림도 산더미 같은데 더 골치 아픈 것은 책이었다. 학생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직업상 책을 많이 다루어야했던 관계로 한 권 두 권 모아두었던 책이 이번 이사에 드디어 대단한 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단독주택에 살 때에도 책이 큰 짐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단독주택에는 그런대로 이곳저곳 책을 쌓아둘 구석이 있어서 안사람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이사할 당산동의 아파트는 근본적으로 면적이 좁아 그렇게 여유롭게 책을 수용하기 어려우니 책의 양을 크게 줄일 밖에 없다. 식구들의 눈치를 보며 책을 내다버리면서도 어렵지만 아파트에도 책방을 마련할 궁리를 했다. 여기 저기 수소문한 끝에 당산동에 사는 김 목수를 만나 책장 높이와 길이를 자르고, 있는 재주를 부린 끝에 작은 책방을 살릴 수 있었다. 이사한 후 그나마 책방에 만들어놓은 레일장에 책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라 할 것이다.

책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못 보던 책들을 다시 만지며 제목만이라도 눈여겨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오래된 책 가운데 빛이 바래 누렇게 되고 페이지마저 너덜너덜한 작은 책이 하나 눈을 끌었다. 겉장이 떨어져나간 책이라 제목은 알 수 없었지만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신도회가 1971년 9월 26일자에 초판을 발행한 ‘불교지침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책은 1면에 김제원 신도회장이 ‘책 머리에’라는 머리말을 썼고,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판권에는 발행인이 박완일, 엮은이가 법정으로 되어 있고 책값은 50원이었다. 겨우 46판 36면에 불과한 작은 책이었지만 저절로 40여 년 전 그 시절을 회상케 하는 것이었다. 당시 신문사 문화부의 종교담당기자로 일하고 있었던 내가 박완일 씨나 법정 스님에게서 이 책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시 신도회에 들렀다가 신도회의 누군가로부터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적으로 한참 어려운 시절에 그래도 불교인들이 재력가인 김제원 회장을 초빙해 이런 포교지를 만들어 배포한 고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동국역경원 편찬부장이던 법정 스님이 그의 첫 저서인 ‘영혼의 모음’을 1972년에 출간하기에 앞서 이 책을 엮어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석가세존의 생애’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이 뒤에 ‘불교성전’으로 발전된 것이라는 심증도 얻는다. 그리고 당시 신도회가 ‘전국순회불교법회’를 열며 포교운동의 지속을 위해 50원의 성금을 받고 이 책을 주었던 사실도 알게 된다. 어려웠던 시절 이들 불교도들의 충심이 지금 같은 풍족한 시절엔 무시되기 쉽지만 사실은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도 새삼 마음에 새기게 된다.

공종원 전 불교언론인회 회장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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