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봄비가 왔습니다. 만물이 봄비를 머금고 새 생명을 대지에 뿌리내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머지 않아 봄날의 축제가 시작되겠지요. 한낱 이름없는 풀일지라도 푸른 생명이 띠는 경외에 우리는 감탄하고 그들을 축복할 것입니다.

사람의 경계도 이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빈부와 권력과 명예와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고 사람의 향기로 고마워하고 함께 호흡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람들간 ‘신 차별’의 세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한 켠에서는 이를 거스르는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로 우리보다 못사는 태국, 미얀마, 네팔 등의 국가에서 온 이들에게 한국은 멸시와 조롱을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분의 주민들이 벌인 일이기는 하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벌레 취급하는 상식 이하의 처사에 대해서는 영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국적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상대방을 멸시하는 그 사람이 오히려 벌레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행동이 부처님의 말씀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태어남에 의해서 천민이 되는 것은 아니며, 태어남에 의해서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서 천민이 되며, 또한 자신의 행위에 따라서 바라문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인간은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포괄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피부색, 신분에 의한 일체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평등주의를 강조하셨을까요? 일체의 평등은 평화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평등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불만이 누적되고 이로 인해 갈등과 분규가 조장됩니다.

부처님의 종족인 석가족과 꼴리야족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기 일보직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로히니 강을 사이에 두고 극심한 가뭄이 계속될 때 서로를 문둥이와 개·돼지로 부르며 멸시와 조롱을 가했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불화의 씨앗은 일파만파로 번져 결국  전쟁 상황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현명하신 가르침으로 일촉즉발의 전쟁을 막았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게송은 이렇습니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 속에서 원한을 버리고 즐겁게 삽시다. 원한을 품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원한에서 벗어납시다. 고뇌하는 사람들 속에서 고뇌에서 벗어나 즐겁게 삽시다.”

원한과 증오를 버리고 화해를 이룬 석가족과 꼴리야족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평등의 정신을 잘 살린다면 조직은 안정되고 번영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본보기가 바로 의상대사입니다. 의상대사는 문무왕이 그 법덕과 공덕을 높이 사 전답과 노비를 주려하자 “우리들의 법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평등하게 보고 신분의 귀천을 없이 하여 한 가지로 합니다. 이러함에 어찌 제가 전답과 노비를 소유하겠습니까?”라며 노비와 전답받기를 거부한 모습은 평등의 실현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의상의 정신이 승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신라시대의 불교는 서민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계는 경계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촌 어느 곳이라도 금방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촉과 경험이 풍부해지고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추세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너와 나의 평등함을 잊지 않는 자세입니다. 열등의식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은 처신이지만 우월감 또한 금물입니다. 상대를 얕잡아보는 태도는 반드시 화를 부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석가족과 꼴리야족이 서로를 멸시하고 조롱한 것이 나중에 전쟁의 위기를 불렀듯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절친한 사이를 빗대 격의없는 관계라고 표현합니다. 사람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보편적 평등성을 실현하자는 의지의 반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 경계를 둔다는 것은 바꿔서 말하면 차별의 심리상태를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경계를 없애기 위해서 전제되는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할 때 어떠한 두려움이나 편애가 생기지 않습니다. 두려움이나 편애가 없다는 것은 곧 경계가 없어진다는 의미와 상통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이에게 사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다문화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계를 없애고 따스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소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처신하는 행위에 따라 귀천이 정해진다는 부처님 말씀을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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