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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세계와 나의 존재
  • 정천구 서울디지털대 교수
  • 승인 2011.03.0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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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충실할 때
의미있는 삶이 된다

얼마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 밖에서 생명체가 살만한 행성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구로부터 20광년 떨어진 ‘글리즈(Gliese) 581g’라는 이 행성은 적색 왜성 ‘글리즈 581’을 중심으로 37일 주기로 공전하며 질량은 지구의 3∼4배다. 물이 있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보던 별들로 수놓은 여름날의 아름다운 밤하늘이 생각난다. 그 때 그곳은 견우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만나는 동화의 세계였다. 오늘날에는 과학적 탐구와 상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천체는 빛의 속도로 130억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까마득한 거리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먼 거리에 있는 별이라도 우리들과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다. 우주 창조 빅뱅의 순간에 별을 만든 물질들은 지구와 함께 태양계를 형성한 물질들과 혼합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과학이 발전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20광년 아득한 우주 저 너머에 있는 생명체들과 관계를 맺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쩌면 지구가 식어서 인류는 그 쪽으로 이주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주과학과 나노 과학은 군사무기, 여행관광산업, 생활 속의 전자제품 등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드라신의 그물망과 같이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 첩첩이 연결되어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에 의해서 확장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나의 존재를 초라하게 만든다. 나는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겨우 170cm의 키에 70kg의 중량을 차지할 뿐이고 인생 100세를 산다 해도 날자는 36,500일, 시간으로 따지면 875,000시간에 불과하다. 20억 광년과 1600억 광년에 비교하면 하루살이의 생애를 비웃을 수 없지 않은가? 여기서 잠자는 시간 등을 빼고 나면 정말로 살아있는 시간, 생생하게 깨어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과학은 다행히도 인간과 비교도 안 되게 작은 미립자의 세계에 관해서도 알려주어 그나마 위안을 삼게 된다. 미립자 측량단위인 나노는 10억분의 1미터이며 미시세계의 시간 단위인 펨토 초는 1,000조 분의 1초다. 미립자의 세계에 비하면 내가 가진 몸의 크기와 일생의 시간은 엄청나게 크다. 작다고 불평할 수가 없다.
더욱이 인간에게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와 같이 자연의 세계와 독립적으로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우주는 거대하지만 인간은 유한한 대신 귀중하다. 우주는 크기를 가졌지만 나에게는 귀중히 생각하는 가치와 인연들이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후회 없이 쓰고 싶다.

대우주의 시공이 아무리 커도 내가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지금 여기밖에 없다. 과거는 다시 불러올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만이 우리가 우주로부터 받은 최대의 선물이다. 영어로 현재라는 단어 프리젠트(present)는 또한 선물이라는 뜻이다.

하루를 초로 계산하면 86,400초다. 우주는 우리에게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86,400초를 준다. 그런데 이 시간 계좌는 당일이 지나면 내가 쓰지 않아도 잔액을 남겨 두지 않고 1초도 더 주지 않는다. 우주가 아무리 광대하고 시간이 많다 해도 오늘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바로 여기서 제 때에 써야 비로소 시간은 나에게 의미를 가진다.

정천구 서울디지털대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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