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곱트교의 신전 훼손
1500년 지난 현재도 큰 오점
한국 종교도 교훈 삼아야

카타르 도하를 거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17일간 이집트의 고대유적을 답사했다. 열흘쯤 전에 알렉산드리아의 곱트 교회에 폭탄테러가 가해져 32명이 목숨을 잃고 97명이 다쳤다는 보도에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으나, 도착 후 내 앞에 펼쳐지는 광경의 경이로움 때문에 마음속의 불안감은 자취 없이 사라졌다.

나는 거기서 B.C.3700년에서부터 기원 전후에까지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오래된 책들을 목격하였다. 필자는 파라오와 귀족들의 무덤과 신전을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전과 무덤의 벽면에는 무언가를 상징하고 의미하는 그림인지 글씨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실이나 생각을 기록한 책이 분명했다. 이 내용들이 해독되면 멀게는 6000년, 가깝게는 2000년 전에 살았던 어떤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그들과 소통하며 경이로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유물 유적들의 중요성과 보존의 필요성을 절감한 시간들이었다.

나일강 양안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삶의 흔적들은 이집트인들만의 유산이 아니라, 세계인이 공유하는 인류의 자산이다. 카이로 고대유물 박물관에 전시된 엄청난 유물의 양에 질린 고고학자의 부러움과 탄식 섞인 외마디 탄성이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것 같은데, 귀국 직후 들려온 카이로 박물관에서 본 투탕카문의 도난소식이 나를 슬프게 한다.

20일 가까운 일정으로 돌아본 거의 모든 유적에는 고의적인 훼손이 있었고, 가이드는 이 훼손자국을 ‘점박이’라고 했다. 곱트교도들이 신전 벽이나 피라미드 내부의 채색 벽화들을 쪼아내어 아름다운 모습들을 추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집트의 곱트 기독교는 예수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하고 신성만 인정했기 때문에 이단으로 낙인찍힌 집단으로, 이집트 국민의 10% 정도가 신자라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그들은 바티칸으로부터 고립되었고, 이집트가 이슬람화 된 이후에는 이교도로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시대의 지하무덤이나 파라오의 무덤, 신전 등으로 숨어 다니면서 신앙을 지키며 살았고, 훼손은 그 흔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 성지 순례과정에서 이집트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가이드가 이러한 설명을 해 주면 간혹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네가 보았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역사적 사실인데 어쩌겠냐’고 한다. 그들이 항의하는 이유는 ‘문화유산의 훼손이 부끄러운 일이고, 비록 이단이지만 이 부끄러운 일을 한 사람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근무하는 이 여행사는 곱트교도가 운영하는 회사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자신도 곱트교도임을 부끄럽지만 정직하게 고백하였다.

이 설명을 듣는 순간 갑자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사찰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 땅 밟기라는 해괴한 일들을 자행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세계에 우리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문화재의 대다수가 어떤 문화재이고,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다 무너져 내리고 나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1500년이 지나도 부끄러운 일로 남는다는 사실을 훼손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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