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받는 지도자는
비바람·뙤약볕 막아주는
큰나무 같은 역할해야

어렸을 적 우리 집 마당에 포도나무가 있었다. 포도 열매를 따 먹었던 기억보다는 포도 덩굴로 만들어진 그늘 아래 놓은 평상에서 뒹굴며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덩굴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눈이 시려서 눈을 감았다가 평상 위에서 잠이 든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얼굴 위로 큰 물방울이 뚝 떨어지는 바람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는데 소낙비가 순식간에 우드득 쏟아졌다. 내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곤히 자는 아이를 깨우기 싫어 그냥 평상 위에 두고 엄마는 부엌에서 일을 하셨던 것 같다.

내 발로 땅을 딛으며 걸을 수 없는 나로서는 소낙비는 위험 상황이었다. ‘엄마’하고 큰 소리로 부르면 당장 달려오실 엄마였지만 난 그 소낙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비를 맞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새로운 경험이라 신기했던 것이다. 비를 맞으며 깨달은 것이 내가 나무와 같다는 사실이었다.

바람이 불어야 흔들리고 비가 와야 목을 축이는 나무와 내가 똑 같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박혀서 모진 바람과 작열하는 태양의 횡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나무나 소낙비 하나 피할 수 없는 내 처지나 다를바가 없었다. 이렇게 나와 같은 운명을 갖고 있는 나무가 나는 싫었다. 그래서 난 그림을 그릴 때 나무를 그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내 잠재의식 속에 나무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변화를 싫어하고 한 가지 일을 고집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발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그 자리를 늘 지키고 있을 것이란 믿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빈약했던 나무에도 그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올 4월이면 장애인방송 30년이 되고 올 5월이면 장애인문학을 대표하는 〈솟대문학〉이 창간 20주년이 된다. 내가 만든 그늘 아래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장애인들이 즐거워한다. 그토록 즐거워하는 장애인을 보면 정말 행복하다. 내 나무는 크지는 않지만 이렇게 행복을 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거목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이유가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함이 아니고 사람들을 거느리고 싶어서이다. 리더라는 미명 아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지배하려는 지도자를 만나면 국민들이 고생한다.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국가는 쇠퇴한다. 또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지도자 역시 불행해진다.

리더는 순수한 나무가 돼야 거목이 될 수 있다. 순수성을 잃으면 거목이 됐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비 바람을 혼자서 다 맞으며 뙤약볕을 막아주는 그늘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거목이 될 수 있다.

나무는 자기를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무가 커지면 그늘이 더 넓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자리를 마련해준다. 거목이 넓은 그늘을 만들 듯이 거목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면 많은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다 보니까 거목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기다리는 지도자는 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다. 그래야 그 그늘 아래에서 행복을 가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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