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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열차, 지금 어디를 달리고 있는가?
  • 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0.12.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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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스님 화쟁사상과
천태지의 대사 가르침으로
남북 평화통일열차 달려야

2007년 5월 17일 남북 탑승객을 태운 통일열차가 반세기 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달리자 많은 국민들이 환호했다. 6.25전쟁 이후 끊어졌던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되어 시험운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통일을 향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하였고, 뒤이어 대통령의 방북을 비롯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당시 시험운행을 위해서 우리 정부가 투입한 비용은 모두 5,454억 원으로 알려졌다. 남측 구간 연결을 위해 3,645억 원, 북측구간 공사비용 1,809억 원이 투입됐다. 그리고 한 번의 시험운행 대가로 1,600억 원 상당의 쌀 40만 톤, 경공업 원자재 지원으로 2,4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했지만 공덕이 되지는 않았다. 올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시작으로 연평도 도발이 이어지면서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됐기 때문이다.

남북교류의 본격적인 시작은 2003년부터였다. 그 해에 개성공단을 착공하고 다음해에는 24개 업체가 입주하면서 남북교역량도 급증했다. 5년 후인 2008년 개성공단에는 북한 근로자가 3만 명을 넘어섰고 입주기업 생산액이 5억 달러를 돌파했다. 2010년 10월 현재 북측 근로자는 4만 5,000명으로 증가했고 생산액은 6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렇지만 남북교류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때문이었다. 1989년 말 현대금강호가 첫 출항을 하면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약 10여 년 동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7년에는 내금강으로 관광지역이 확대되고 개성관광도 시작됐다. 그러나 이 모든 공든 탑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지면서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이 모두 중단되고, 개성공단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1975년까지 잘나가던 북한 경제가 위축되기 시작한 것은 구 소련이 붕괴하고 새로 러시아 연방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그동안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에너지를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면서 사회주의 경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동서독 통일 이후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스며들면서 소련은 끝내 붕괴하고 말았다. 이 여파가 파급되어 북한은 지난 20여 년 동안 심각한 에너지난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남북교류로 경제회생의 기반을 마련한 북한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수입을 민생 투자보다는 핵무기 개발과 군사력 유지를 위해 써버렸다. 세대교체기에 들어선 북한 정권은 정권안보를 우선시하는 선군정치로 심각한 경제왜곡을 초래했고, 그것이 북한 경제의 큰 암초로 작용한 것이다.

황해도 개성시의 10만 인구가 개성공단 수입에 크게 의존하여 살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에 가장 통 큰 지원을 해 온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제 남북관계를 단절시키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나친 남한의존이 북한주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정권세습에 장애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열차는 달려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삼국통일의 정신적 토대를 만든 원효 스님의 화쟁사상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위진남북조의 격랑을 헤치고 많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구제한 천태지의 대사의 가르침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남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투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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