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춘 광 감사원장

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이 폐막되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금메달 76개, 은메달 65개, 동메달 94개로 개최국인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입니다.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일본을 크게 이긴데 대해서 스포츠계는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아시안 게임도 우리에게 너무나 평범한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노력하는 자만이 그 달콤한 열매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입상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흘린 땀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경기라는 것이 실제 들여다보면 운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냉정하게 살펴보면 경기 운도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지 않나 싶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노력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뛰고 땀흘리고 하는 식의 훈련은 경기력을 향상시키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경기에서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적인 훈련방법을 찾아내 과학적으로 그것을 조련하고 향상시키는 훈련, 이것이 현대 스포츠계에서 추구하는 훈련법입니다. 이것이 또한 지도자의 몫이며 역할입니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매사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일정한 목표없이 ‘무작정’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도로’(徒勞)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허망한 부분에 열성을 쏟는다면 그것은 참된 노력과 거리가 있습니다.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끈기와 인내가 몸에 베인 노력파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생각 끝에 큰 돌을 갈아 장난감 소[牛]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부지런히 큰 돌을 갈고 다듬었습니다. 침식을 잊으며 밤낮없이 큰 돌을 갈고 다듬는 그의 집념에 보는 이마다 혀를 내두르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그가 만들어 낸 것은 보잘 것 없는 장난감 소였습니다. 처음 거대한 큰 돌에 망치를 들어 다듬질을 할 때 보냈던 사람들의 찬사는 이내 비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예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힘든 작업과 땀으로 점철된 노력도 쓸데없는 부분에 집중된다면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올바른 노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팔정도에 나오는 ‘정정진’(正精進)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올바른 노력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의 상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미 일어난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의 상태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셋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착하고 건전한 마음의 상태를 북돋는 것입니다. 넷째, 이미 존재하고 있는 착하고 건전한 마음을 개발하고 완전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노력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을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우리 일상사에 대비한다 해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한때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관람했던 ‘타짜’에 나오는 얘기지만 도박기술의 달인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깃들어졌을까요? 그렇지만 도박기술의 달인에 대해 경탄과 존경의 마음을 담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기술의 터득을 위해 기울였을 노력을 다른 유용한 일에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해 낼 것입니다.

〈법구경 화향품〉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궁중에 있는 두 여인이 아난다 존자에게 가르침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다른 한 명은 게으름을 피워서 공부에 거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다 잘 깨닫기 위하여 정진하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는 진리의 말도 단지 향기없는 꽃이나 열매없는 과일 나무와 같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에 걸맞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당혹스럽고 난감해집니다. 타고 난 능력차이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으므로 낙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불자님들이 꼭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정신적인 타락과 공허입니다. ‘안된다’라고 하여 인간은 이내 손쉬운 유혹과 악행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부처님은 이점을 특별히 경계하시고 있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바보 수행자 ‘주리 반특가’의 일화는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부처님은 주리반특가에게 수행자들의 신발을 닦아주며 ‘먼지를 털자’라는 아주 간단한 게송만을 외우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바보 주리반특가도 열심히 그 게송을 외우다 뜻을 알아채고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섰습니다. 게으른 자는 얻을 수 없지만 참되고 올바르게 노력하는 사람은 능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잘 새겨 하루하루 끊임없이 노력하는 불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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