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도 산 종의회의장


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연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추위도 함께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매년 이맘 때면 온정의 손길이 이곳 저곳에서 펼쳐졌습니다. 그렇지만 올해는 다르다고 합니다.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건이 터지고 나서 사람들의 불신이 깊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기부단체의 분석에 의하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건이 보도되자 지난 10월 한 달 간 모금액은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14억 원 가량 줄었다고 합니다. 도움의 손길이 더욱 절박한 시점에 후원 손길이 줄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의 불신을 없애고 기부문화를 보다 건강하고 투명하게 하려면 정부의 제도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비영리단체의 경우 그들 특성에 맞는 회계 보고 양식을 만들어 공시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기부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기부단체들의 투명성을 살필 수 있는 제도가 잘 마련돼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같은 세계적인 부자들이 ‘재산의 절반을 내놓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있는 데에는 기부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기부자들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덕이 크다 하겠습니다.

어쨌든 연말이 다가오면서 따뜻한 온정이 필요할 때 ‘사랑의 온도계’가 냉각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부 기부단체의 안이하고도 허술한 경영과 그들의 옳지 못한 처신을 탓할 수만도 없습니다. 그 피해와 여파는 고스란히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손길’을 거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충분치 못한 재물이라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은 ‘나눔’에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잡아함경》에 나온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파사익왕이 부처님께 문안드리고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성안에 마하남이라는 거부장자가 있습니다. 그는 큰 부자이면서도 먹고 입고 사는데 있어서 자신에게도 매우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남에게는 인정없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그가 수행자나 가난한 나그네, 불쌍한 사람에게 베푼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항상 문을 걸어 잠그고 사람들을 들어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참된 부자라고 할 수 없소.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쓰지도 않고, 부모와 처자 권속을 돌보거나 하인들을 가엾이 여기지 않고 이웃에게 베풀 줄도 모르오. 그는 수행하는 사람에게 베풀어 미래의 안락을 준비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며 재물의 참된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마치 넓은 들판의 연못에 물을 가두어 두었으나 그 물을 마시거나 쓰는 사람이 없어 햇볕에 말라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시여, 현명한 사람은 많은 재물을 얻으면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 쓰고 베풀어서 몇 배나 큰 공덕을 얻을 줄 알고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됩니다.”

부처님은 재물을 넓은 들판의 연못에 비유하셨습니다. 이 연못은 누구나 갈증이 날 때 목을 해소할 수 있고 필요로 할 때 끌어다 쓸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연못의 물은 풍성해집니다. 반대로 가두어 두기만 하고 쓰임새가 없다면 곧 햇볕에 말라 없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온정을 베풀면 베풀수록 우리의 마음은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온정을 베풀기에 인색하다면 그 자체로 마음이나 재물이 옹색해질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함께 던져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환경’의 요인에 영향을 받아 삶을 영위합니다. 인간의 단위를 ‘개인’이라고 할 때 그 개인들은 좋지 않은 환경의 인자로 인해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환경’은 다른 말로 ‘자연’일 수도 있고 혈연일 수도 있으며 통칭 ‘사회’일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떼어놓으면 인간은 모두 평등한 것입니다.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는 미완의 여래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간은 태어날 때 천하고 귀한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는 행위에 따라 귀천이 보여지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종교는 인간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과 수학과 문명도 궁긍적으로는 인간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수단입니다. 나 하나만 행복하다 해서 모든 것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나눔’은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 볼 때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기부행위’는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덜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연기론에 입각해 살펴보면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어 한 단계 높은 삶의 질을 꾀하는 고차원의 방정식이 개입돼 있는 ‘실천행’입니다. 연말을 앞두고 불자님들의 따스한 자비행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 두루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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