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춘광 감사원장

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국의 산하가 단풍으로 채색되어 가을의 풍광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한 번도 어긋나는 법이 없습니다. 봄에 움튼 새싹이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며 자라더니 어느덧 풍성한 열매를 맺은 후 또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섭리를 저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섭리는 곧 연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섭리에서 자꾸 벗어나려 합니다. 인간에 널리 유포된 예언서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몇 년 전 종말론이 유포되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점치는 예언서들이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습니다. 철학자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를 살수록 사람들이 예언에 크게 빠지고 예언서를 의지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고 분석합니다.

지금도 서점가에 가면 ‘예언서’ 관련서적만도 수십 종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는 한 때 30만부 이상 팔려 나간 대형 베스트셀러도 있습니다. 서점 관계자는 예언서 책자로서 베스트셀러의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이 10여 종에 이른다고 밝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 구한말 이후 내려오던 비결서(秘訣書)를 현대적으로 해설한 ‘난세의 국운송하비결’이 발간되자마자 한 달 만에 1만부가 팔린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 헌종 때 김씨 성을 가지고 태어난 송하옹(松下翁)이란 도인이 조선조 말부터 올해(2010년)까지 120년간 한반도에서 일어날 세상운수를 사자성어 형태로 예언한 비결서라고 합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구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밖에도 언론과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무속인들도 저마다 예언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세상사의 미래를 점치는 예언과 관련한 사람들의 관심은 인터넷에서도 열기가 뜨겁다고 합니다. 관련 사이트 수가 수십 개에 이르고 있고 이 사이트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숫자가 하루에만도 수백에서 수천에 달한다고 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는 회원 수가 1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언이 적중된 예는 없습니다. 특히 때때로 제기된 종말론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저런 예언도 기실 해몽이 좋아 그런거지 실체를 들여다보면 허구 일색입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2003년 미국의 대중 주간지로 알려진 ‘선’은 ‘8월 26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예언을 소개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습니다. 당시 ‘선’은 8월 26일을 선과 악의 최후 결전이라 할 ‘아마겟돈의 날’로 밝히고 이는 프랑스의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의 예언을 연구하고 있는 도나 앤드루스 박사가 한 프랑스인의 서고에서 발견한 500년 된 고문서 ‘제나르의 유서’를 토대로 제기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발표에 당시 한국의 일부 개신교파 신도들은 흥분을 절제하지 못하고 ‘회개하라’며 온갖 납득치 못할 행태들을 자행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은 거짓으로 끝났습니다. 2003년을 지나 거듭 해가 바뀌었고 올해로 2010년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경험을 하고서도 왜 사람들은 여전히 예언과 예언서에 의존하는 경향을 버리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대학입시를 앞두고 점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가운데 복채 문제로 소송하는 일까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불자들이 ‘진리로 가는 길’을 몸소 보여줘야 합니다. 결코 미망(迷妄)의 허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며 환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된 현실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종말론이 그간 얼마나 사람들을 기만했는지 그 허구를 바로 꿰뚫어 밝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신 앞에 머리 숙이며 죄를 용서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바로 인식시켜 줘야 합니다.

연기법은 이러한 허황과 모순을 바로 잡아주는 부처님의 세계관입니다. 연기의 구조로 볼 때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결론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처음과 끝이 있다고 보는 자체가 허황된 것입니다. 혹자는 세상사의 앞일을 미리 알아 사전에 대응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언의 목적이 미래상황을 미리 경고해 사람들로 하여금 현명하게 대처하도록 하자는데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현명한 삶은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내일의 불운은 오늘의 죄업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법에 귀의하고 진리를 따르면 미래에 대한 불안함 따윈 없을 것입니다. 참된 이치를 사랑하는 사람은 번영하고 참된 이치를 저버리는 사람은 파멸합니다. 일찍부터 공덕을 쌓아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것이 최상의 행복입니다.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과 번민 없이 안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