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정산 총무원장

불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르지 못한 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가을 장마가 형성되더니 급기야 물폭탄까지 만들어 냅니다. 어렵게 사는 이들의 시름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최근 ‘명품녀’ 논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케이블 텔레비전에 출연한 20대 여성이 부모가 준 용돈으로 수억원대의 명품과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구입했다고 밝힌 것이 국민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20대 여성은 방송에서 “나는 무직이지만 몸에 걸친 것만 4억, 목걸이는 2억, 자동차는 3억”이라며 자신의 호화스러운 생활을 공개했습니다. 방송을 지켜 본 시청자들은 분개하며 정부를 향해 성토했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돈이라면 관련 세금을 낸 정당한 돈인지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입니다. 급기야 국회에서까지 이 문제를 다룰 정도로 민감한 사안으로 부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짧은 기간에 엄청난 속도의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국제사회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경제적 지위로 각종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로움에 비해 정신적 빈곤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선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경쟁하듯 ‘외양 가꾸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비싼 물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성형으로 얼굴을 바꾸는 일이 청소년 때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정신문화를 황폐화 시키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세계 각국에 비해 모든 면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지만 삶의 만족도에 있어서는 하위군으로 분류됩니다. 또한 정신적 영향과 관련된 사회문제인 자살율, 범죄율 등은 세계에서도 상위권에 해당되고 있습니다.

칼 야스퍼스는 ‘현대의 정신적 상황’이라는 글에서 인간의 의식을 ‘즉물주의’라고 표현했습니다. 즉물주의란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인간, 오로지 관능적 향락만을 추구하고 무한한 물질적 욕구의 충족만을 생각하는 인간들의 의식인 것입니다.

물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의식주는 매우 중요한 생활자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다운 마음 자세와는 전혀 관계없이 돈이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풍조에서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나날이 물질만능주의로 가는 세태와 관련 다음과 같은 일화는 우리 현대인들의 정신적 고뇌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의 한복판, 백주 대낮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쓰레기를 뒤지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대낮의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보여지는 현상이니 미관상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호텔의 매니저가 나와 그들을 쫓아냅니다.

맨해튼의 또 다른 대형 수퍼마켓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퍼마켓에서 나온 쓰레기통에서 싱싱해 보이는 당근, 브로콜리, 바나나, 음료수 등을 골라내고 있습니다. 지나는 행인들이 불쾌하고 의아한 눈길을 보냅니다.

이들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들은 걸인도, 노숙자도 아닙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프리건(Freegan)’이라 부릅니다. 프리건은 ‘프리(Free)’와 ‘베건(Vegan)’의 합성어로 자유로운 채식주의자란 뜻입니다.

이들 프리건은 돈을 지출하지 않고 필요로 하는 물건을 얻습니다. 또 자연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얻는 것이 프리건의 생활방식입니다. 프리건은 이러한 삶을 통해 인간들에게 타락한 자본주의를 경계하고 검약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부처님이 이미 2,500여 년 전에 설파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전륜성왕의 사자후’라는 설법을 통해 사회적 병폐인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발전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할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을 영위하는 수행자에게 물어보라고 권고합니다.

“너의 나라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거든, 부를 획득하는 방법을 제공해야 하리라. 너의 나라에 술 안 먹고, 참을성 있고, 진실되게 사는 승려와 고행자들은 고요한 마음으로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들에게 가서 묻거라.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입니까? 무엇이 비난받을 짓이며 무엇이 비난을 벗어나는 길입니까? 무엇을 북돋우며 무엇을 억제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물질적 빈곤을 타개할 것도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정신적 풍요를 더 값진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타인과의 이질감과 불쾌감, 갈등을 유발하면서 향유하는 물질적 수단을 크게 경계하셨습니다. 오히려 도덕적 정신적 풍요의 행복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실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불교경제학이 우리 사회의 교과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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