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조 동국대 교수

4대강 등 정치쟁점
종교계 적극 개입 부적절
원론적 방향 제시 그쳐야

종교와 정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오래되었을까? 흔히 종교의 역사가 훨씬 오래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치가 종교보다 앞선다. 사람은 셋만 모이면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종교나 정치는 모두 인간을 다루는 영역이다. 정치는 보다 현실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양자의 궁극적 목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인류가 집단적 생활을 시작한 이래 정치나 종교는 필수수단이었다. 나라의 규모가 작을 때는 추장, 혹은 족장의 성격으로 정치를 운영했지만, 규모가 커져 가면서 국왕, 혹은 봉건지주 등 갖가지의 정치형태가 발전해 왔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가 가장 우월한 정치제도임을 믿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누가 알리오? 한참 후에 인류는 1세기 전만 해도 민주주의가 제일인 줄 알고 살던 야만적 시대가 있었다고 가르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반면 종교 역시 부단한 부침을 거듭해 왔다. 원시시대의 종교는 흔히 제식(祭式) 위주로 발전하였다. 샤머니즘이나 아니미즘적 특징을 지닌 고대사회에서는 자연을 신격화하는 일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사회는 제정일치, 즉 정치 지도자가 종교적 리더인 경우가 많았다. 중세 유럽에는 가톨릭 주교의 권위가 역대제왕들을 압도하였다. 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제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동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임금 위에 왕사, 국사가 있었다. 즉 종교가 정치 위에 군림하는 양상이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종교 지상주의가 빛을 잃게 된 것은 십자군 전쟁, 르네상스 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특히 다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종교는 지난날의 영광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표된 각 국의 헌법에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되, 국가권력과 결부되서는 안된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종교와 정치는 어떠한 역학 관계를 가져야 할까? 종교와 정치가 야합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왜냐하면 종교적 진리가 세속화하게 되면서, 그 사회의 이상적 가치가 몰락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종교와 정치의 대립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반드시 피를 부르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은 절대 신념이기 때문에, 정치적 압박에 대해서 죽음으로 항거한다.

그렇다면 야합도 대립도 아닌 관계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종교와 정치의 ‘긴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치는 진심으로 종교를 존경해야 한다. 그들의 수도자적 기품과 품위 있는 삶이 그 사회의 등불이며, 목탁이라는 확신을 지녀야 한다.

반면 종교는 세속적인 영역에 시시콜콜하게 관여해서는 안 된다. 간혹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에도 원론적인 수준, 훈수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 예컨대 종교가 세종시 이전, 4대강 사업, 개헌 문제 등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종교에도 자신들의 영역이 있듯이, 정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부처님은 사회적 문제를 외면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그 이슈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도 없다. 그 분은 언제나 간접교화를 시도하였다. 가야할 방향에 대한 원론적 제시는 하였지만, 그 구체적 방안을 정치, 경제, 군사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그동안의 우리 불교는 사회적 관심이 덜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지나친 것이 문제이다. 이래저래 중도가 아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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