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동북아시아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정신적 스승 필요하다

최근 동아시아 정세가 심상치 않다.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동아시아는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과 수교 등 국제정치의 틀 속에서 일정기간 움직여 왔다. 1979년 미중수교에 이어서 1992년 한중수교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정세는 다소 요동쳤지만 현상유지라는 국제정치의 기조는 유지되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10년 현재 미국의 힘은 약해진 반면 중국은 미국을 견제할 수 있을 정도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소련의 뒤를 이은 러시아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다시금 세계질서의 재편을 염두에 둔 국제간의 경쟁과 갈등이 싹트고 있다.

현재와 같이 복잡한 동아시아의 상황은 1,500여 년 전 중국의 천태 지의대사(538~ 597)가 태어나 활동하던 시기와 유사성이 많다. 당시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전쟁으로 많은 왕조가 교체되었으며, 치열한 전쟁 끝에 수나라의 통일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반면에 한반도는 고구려와 백제 및 신라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북쪽에서 거란의 등장으로 국제정세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당시 지의대사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일념삼천의 돈교 사상을 제시하였다. 또한 지의대사는 후일 수나라 황제의 지위에 오른 진왕 광에게 보살계를 주고 정사를 잘 돌보도록 이끌어 주었다. 더불어 신해행증의 신행방법을 제시하면서 수행자는 더욱 수행자답게, 재가불자들은 더욱 재가불자답게 공부하는 방법을 이끌어 주었다.

대사는 당시 중국에서 황실에 가장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수행자였으나 세간의 일을 출세간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출가 수행자로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중생들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력을 결코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전쟁과 훼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모든 국민들을 구제하고 교화하는데 촌음을 아끼지 않았다.

대사의 공가중 삼관설은 오늘날 국제문제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국제정치의 현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고정불변의 실체도 아니고, 유명무실하게 존재하는 부질없는 현상도 아니다. 오늘날의 국제적 현실은 모두가 조건 지어진 인연으로 일정기간 존립하였다 사라질 뿐이다. 복잡한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도사상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체득할 필요가 있다.

지의대사가 열반에 드신 뒤 20년 후에 신라에는 원효대사가 태어나 신라 삼국통일의 토대가 되는 불교적 원리를 제시하였다. 원효대사는 귀일심원과 화쟁사상을 제시하면서 민초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의대사는 중국에서 황제의 스승으로, 원효대사는 신라에서 국가의 스승으로 각자 도탄에 빠진 중생들을 구원하는 지혜의 광명을 보여준 것이다.

현대사회는 국제경제의 틀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시기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주도권 다툼도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미래를 향한 비전이 필요한 때이다. 지의와 원효 대사와 같은 큰 스승들의 가르침은 서로 다르지 않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도 계속 유용하다. 다만 시대를 통찰하고 정신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큰 스승이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그런 지도자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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