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의 힘은 지계
자자·포살로 정화해
모든 세속 공동체 귀감돼야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린 무소유의 법향이 다 타기도 전에 불교도들을 부끄럽고 민망하게 하는 일들이 불교계의 핵심부에서 터져 나왔다. 외부세력에 아첨하여 승가의 자율성을 훼손했느냐 아니냐? 종단의 제도변경과 인사문제에 외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등의 문제로 승단의 고위 구성원 사이에 망어·악구·양설·기어가 횡행하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 설전의 어느 한 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망어는 바라이를 범하는 일이고, 그것은 승가에서 퇴출되는 중죄이다. 재가자도 어겨서는 안 될 이 같은 중죄를 승단의 고위 소임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범하고 있다.

승가의 힘은 지계의 힘인데, 고위 소임 자들이 계율을 이렇게 우습게 안다면, 그 승단이 어떻게 사회의 귀감이 되고, 중생의 정신적 삶을 향도할 도덕적 권위가 있겠는가? 승가의 율장적 질서가 세속법에 의존한다면, 그러한 승가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시론에서 경전이나 율장에 전해지고 있는 자자와 포살이라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승가의 자기정화 장치를 소개하려고 한다.

2500여 년 전 어느 해 우기 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 저녁, 사왓띠의 동쪽 교외 미가라마뚜 강당 앞뜰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붓다를 포함한 한 무리의 수행자들이 둘러앉았다. 장로 솔선수범의 상가 문화에 따라 먼저 붓다가 일어나 합장한 손을 높이 들고 대중들을 향하여 “대덕들이여, 나는 이제 자자를 행하노니, 대덕들은 내 행위와 내 언어에서 무엇인가 비난할 만한 것을 보고 듣고 또는 미심쩍은 생각을 지니지 않았던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 주시오”라고 말했다.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감격에 벅찬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세존이시여, 아무도 세존에게 비난해야 할 점을 보았다고 하는 이는 없사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리불이 붓다와 마찬가지로 자기 허물의 지적을 청하자, 이번에는 붓다가 직접 그의 청정함을 증명해 주었고, 500명의 비구가 차례로 자자를 행했고, 한 사람도 비난받아야 할 자는 없었다고 한다.

또한 율장 대품에는 포살일 계본을 외우기 전에 일종의 포살법회 개회사에 해당되는 대중에 대한 고지 속에는 ‘허물이 있는 자가 허물을 드러내고, 참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의적인 망어죄를 짓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상좌부의 승단에서는 지금도 초하루 보름날에 이 아름다운 자기 정화의식을 거행한다. 이날은 사원 내에 거주하는 스님들이 서로 마주치게 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마주 보고 앉아 승랍이 낮은 스님이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고 먼저 “아파타 아파티오 아로치미 아파티오”하고 참회를 한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꾸어서 장로스님이 참회를 한다. 포살일에는 온 사원이 이 참회의 소리로 넘쳐난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강당에 모여 계본을 외우는 것으로 포살 법회를 끝낸다.

승가는 인간이 만든 공동체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수승한 인간 공동체이다. 때문에 승가는 모든 인간 공동체의 귀감이 되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는 집단이다. 도덕적 권위가 충만한 청정한 상가의 유지·전승을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정화의 자자와 포살을 행하는 그러한 상가에 지심으로 귀의하고 싶은 것은 나만의 희망사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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