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춘 광 감사원장

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설을 지나면서 날씨가 한결 포근해졌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자 새순을 드러내는 성미 급한 꽃나무도 눈에 띕니다. 이제 곧 있으면 산하대지가 기지개를 켜는 역동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숱한 생명들이 잉태되면서 우주 공간에 경이로운 숨결을 뿜어냅니다. 이 같은 자연현상을 보노라면 생명의 신비함이 느껴집니다. 다소 감성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모든 생명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의 문제와 관련해 최근 기막히면서도 영화같은 슬픈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남편과 이혼해 아이들도 보지 못한 채, 생활고에 시달리며 근근이 생활하던 여인이 어느 날 밤 정체모를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불한당이 저지른 이 사건은 여인의 몸에 아이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은 여인이 성폭행으로 인해 생긴 아이를 낳겠다고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전 남편과의 이혼으로 자식들을 보지 못하는 괴로움을 위로하기 위해 하늘이 아이를 자신에게 보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여인의 결정에 위로와 격려를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불행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며 공감을 표시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를 접하곤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의 현상들을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행법상 낙태가 불법으로 규정된 현실 속에서 찬반양론의 격한 대립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쪽이든 민간시민사회든 진정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제일로 내세우는 경우는 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단지 현실 문제만을 내세워 ‘된다’ ‘안 된다’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생명관은 오온설에 근거합니다. 육체와 마음으로 구성된 다섯 가지 존재의 구성요소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식입니다. 부모의 사랑 이외에 식이라는 정신적 요소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불전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증일아함경》에서는 “부모가 함께 자더라도 밖에서 식이 오지 않으면 수태하지 못 한다”라고 하고 “부모가 병이 없고, 식신이 오고, 부모가 아기를 얻을 상을 갖추었으면 수태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한 생명의 탄생이 그저 생물학적인 기준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부처님은 그 죄과가 얼마나 큰지 경계하셨습니다. 《잡아함경》 가운데 짧은 경전에 속하는 《타태경》에서는 낙태를 했을 때 백천 년 동안 고통을 받는 죄과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출가자의 계율을 설해놓은 내용 중 남편이 없는 사이에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잉태하게 된 한 부인의 요구에 따라 낙태에 동참한 승려를 바라이죄로 엄히 다스리는 대목 등이 나옵니다. 부처님은 낙태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를 바라이죄로 다스릴 만큼 생명의 소중함을 대중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한 생명을 맞이하는 마음자세도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약사본원경》에 이르길 “또 어떤 여인이 해산할 때에 이르러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약사유리광여래의 이름을 부르고 찬탄하며 공경, 공양하면 모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낳은 아이는 몸이 튼튼하고 아름다워 보는 이마다 기뻐하고, 총명하고 건강하기 그지없어 어떤 귀신도 그 아이의 정기를 빼앗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약사본원경》의 말씀처럼 생명을 맞는 자세를 경건하게 한다면 잘못될 리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앞서 말씀드린 여인의 결정과 선택이야말로 최고의 찬사를 받아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주위의 따스한 격려와 지원이 간과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불자들로서는 이 모녀들이 향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는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종교인이라면 인간의 현실 생활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행위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애장왕 시절 정수(正秀)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한 거지 여인이 눈이 많이 내린 겨울 밤 아이를 낳고 얼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슴에 품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범계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거지 여인을 외면했다면 정수 스님은 오히려 생명을 해하는 더 큰 바라이죄를 범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여인의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린 생명까지 살렸습니다. 별 내용이 없는 듯 보이는 정수 스님의 이 일화는 지금까지 기록에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귀족들의 호사스런 삶과는 달리 거지로 추락하는 평민들의 삶을 얘기하는 것이요, 이성을 품어서 안 된다는 완고한 계율 적용의 문제가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상황 앞에서는 문제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성찰해 볼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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