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경인년 새해가 밝은 지 어느 새 한 달이 흘렀습니다. 올해는 무슨 계획을 세워놓으셨습니까? 아직도 이렇다 할 목적과 계획 없이 생활하고 있다면 다시금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한 목적 없이 산다는 것은 나침반 없이 대해를 헤매는 것과 같으며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느 곳에 있든 주인공이 되라는 뜻)하라는 역대조사들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비불자의 행동과 진배없기 때문입니다.

불자의 삶은 발원(發願)에서 비롯됩니다. 발원은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루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행동의 표식입니다. 그것이 나의 복전이 되고 이웃을 위한 회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원이 없는 삶이란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나와 남에게 무익한 죽은 삶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발원이 없으므로 언제든 방일과 일탈을 손쉽게 하므로 존재가치를 현저히 떨어뜨리게 됩니다.

10여 년 전 우리나라는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IMF로 불렸던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달러의 고갈이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가 바닥이 난 상태에서 부채상환과 외환 결제의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나서서 아기 돌 반지까지 내놓으며 경제위기를 타개하고자 힘을 합쳤습니다. 이런 가운데 경제위기를 부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놓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담론이 전개됐습니다. 그 당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한국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 “꿈꾸지 않는 한국 리더십의 부재에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달러의 고갈보다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 한 신문기사의 칼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달러의 고갈은 당시 국민들이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국가의 백년대계에 있어선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지도자들마저 꿈이 없는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으니 이 같은 분석이 설득력을 더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이 자녀의 양육과 교육문제에 있어서 꿈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생활하는 것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무작정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경인년 새해 꿈을 설계하고 시작하는 사람과 지난해와 다를 바 뭐가 있겠냐며 대수롭잖게 새해를 시작한 사람의 연말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부릅니다.

고려시대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1055~1101)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각국사는 고려11대 문종왕의 넷째 아들입니다. 국사의 나이 11세 되던 해 문종은 국법에 따라 왕자 중 한 명을 출가시켜야 했으므로 왕자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너희들 네 왕자 가운데 누가 능히 나와 나라를 위해 출가하여 복전이 되겠느냐?”
다들 주저하고 있을 때 가장 나이 어린 넷째가 나서 “소자가 아바마마의 뜻을 받들어 마땅히 출가하겠나이다”고 말했습니다.

대각이 출가를 결심한 것은 단지 아버지 문종의 고민을 해결한다거나 국법을 지키겠다는 개인의 의지에 따른 것만은 아닙니다. 국사의 제일 업적 가운데 하나인 ‘고려속장경’간행은 왕자 신분을 떠나 나라의 복전을 일구겠다는 뚝심의 발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속장경 간행은 대사의 필생의 사업으로 진행되었고 이밖에도 ‘원종문류’, ‘석원사림’ 등 일종의 불교대문학전집 등을 펴냈습니다. 대각국사는 단 한 번도 일탈의 삶을 산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일을 해내겠다는 발원을 세웠으면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그 일에 몰두했습니다.

《아함경》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얼굴이 단정하고 행동이 기품 있어 보이는 한 재가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가르침을 구했다.
“부처님! 사람은 어떻게 해야 명예를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재물을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하면 덕망이 높아지고, 어떻게 하면 좋은 벗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계율을 지키시오. 재물을 얻고자 한다면 보시를 행하시오. 덕망이 높아지고자 한다면 진실한 삶을 살고, 좋은 벗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자비를 베푸시오. 그러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그 재가자는 기쁜 얼굴로 돌아갔다. 《잡아함》 48권 1282경 ‘명칭경’

불자 여러분!
경인년 여러분이 발원한 내용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어려운 것이 꿈은 원대히 세웠음에도 이루기 위한 길을 찾아내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중도에서 포기하는 경우도 그래서 적지 않습니다. 해답은 바로 부처님의 이 대답에 있습니다. 정진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천태종 정산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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