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풀어야 할 남겨진 부분이 많이 있지만 용산 사태가 만 일 년을 넘기지 않고 정부의 사과와 함께 타결된 것은 그 어느 편의 입장에서 본다 해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경쟁과 개발을 우선으로 하는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었다. 의원 숫자로 무리하게 밀어 붙인 미디어법 통과 과정이나 긴 시간과 갈등을 거쳐 법으로 마무리된 세종시에 대한 수정 논란 등 여러 주요 사안이 새삼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종 판결까지 장기간 소요되었던 재벌 총수는 단 몇 개월 만에 대통령의 뜻으로 단독사면된 것처럼 현 정권에서의 사회적 분열의 바닥에는 기득권에 대한 특정 권력 집단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굳이 현 정권만이 아니라 우리의 근대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제나 정경유착의 형태로 민생보다 권력집단의 이해관계가 우선적으로 사회 정책에 반영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힘없는 민초들의 삶이나 생활 터전은 철저히 소외되면서 관심대상에서 제외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왔다. 그렇다면 소위 선진국으로 향한 한국의 발걸음 속에 불교가 관심을 지니고 대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가는 자명해진다. 권력을 지닌 소수에게는 권력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서는 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 이것은 특정 시대나 문화를 떠나 언제나 불교에게 요구되는 의무이자 권리일 것이다.

불교계, 사회갈등에 사후약방문
대처와 메아리없는 口頭禪
실천 생활화로 선도해야

마침 조계종 총무원장스님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 하는 불교’를 이야기하고 사회적 소통과 공동선 실현을 위해 ‘사회 갈등 해소를 위한 화쟁(和諍)위원회’를 운영할 계획을 밝혔다. 이 화쟁위원회는 진보와 보수, 노와 사, 남과 북, 정부와 NGO 등 각종 사회적 이견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고 한다. 그동안 사회적 책임이나 갈등에 소극적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대 권력에 야합한 적이 많았던 불교계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의 사회적 참여과정에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이번 용산사태에서도 나타났지만 사회갈등 해소에 있어서 불교의 역할이 타 종교에 비해서 특별히 눈에 뜨이지도 않고, 특히 언제나 사후 약방문의 형태로 진행된다. 언제나 불교는 중생의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연기적 실상을 강조한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할 때 불교는 결코 소극적 종교가 아니다. 뭇존재가 놓여있는 관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라는 말씀이라면 단절되고 소외된 관계의 복구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바람직한 관계 형성을 위해 미리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많은 갈등의 여지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장차 무엇이 갈등의 소지가 될 것인지 불교계 내의 여러 종단들이 힘을 합해 지혜를 모으고 예상되는 사회문제가 터져 나오기 전에 미리 사회의 의식 개혁과 실천이 생활화 되도록 함으로써 선취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사회 문화운동을 해야 한다. 갈등이 표면화 되어 생겨나는 사회적 상처는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국 누구의 책임을 떠나 전체사회를 힘들게 한다. 더 이상 시대를 뒤쫓는 불교가 아니라 사회문제를 미리 해결하며 건강한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불교계는 적극적인 참여의 자세와 능동적이고 선취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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