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도 산 종의회의장

“인간의 400년이 도솔천(兜率天)의 하루다. 이 30일을 1달로 하고, 12달을 1년으로 4000년 한 것이 도솔천의 수명이다.”〈중아함경〉

우리들은 연말연시를 맞을 때마다 신년의 새로운 계획을 짜고, 지난해를 반성하느라 분주하고, 동문회다 송년회다 하면서 정신없이 보내게 됩니다.

또 한 편에서는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달래는 손길이 펼쳐지기도 하고, 한 해 한 해 나이 먹는 것을 기뻐하는 청소년과 슬퍼하는 노년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보면 인간(지구)의 1년 이라는 시간은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고, 그만큼 한 해의 오고 감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시간개념으로 ‘찰나(刹那)’라는 말이 있는데,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을 말합니다. 숫자로 환산하면 약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찰나에도 수 백 번 바뀌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경전에서는 우주의 원리에 대해 “모든 존재가 찰나마다 생겼다 멸하고, 멸했다가 생기면서 계속되어 나간다”는 ‘찰나생멸(刹那生滅) 찰나무상(刹那無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공전주기(1년)를 지구의 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수성 88일, 금성 225일, 화성 687일, 목성 11.9년, 토성 29.5년, 천왕성 84년, 해왕성 164년, 명왕성 248.4년이라고 합니다. 즉 지구의 1년이란 명왕성의 하루 남짓한 시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개념을 은하계와 전 우주로 확산해 보면 “정말 무상(無常)한 것이 세월”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루살이’라는 동물을 빗대어 “겨우 하루밖에 살지 못하면서 생노병사(生老病死)와 번뇌(煩惱)가 있으니 참으로 가소롭다” 고 비하합니다. 하지만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생태 시간은 지구 생태계 전체 시간 중에서 “겨우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 인간이야말로 얼마나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란 말입니까?

그 중에서도 ‘인생(人生)’이라는 유한하고도 짧은 시간을, 긴 시간인 양 착각하며 마냥 쓸데없이 허비하는 이들이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평생을 하루같이 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루를 평생처럼 쓰는 이가 있으니, 연말연시에 우리가 반추해 볼 것은 스스로의 삶입니다.

또 한 편에서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세계 기후변화와 핵무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한 시간은 ‘수 분’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핵무기와 온실가스를 초래하고 있으니, 그 또한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권세는 십년을 못가고, 부자도 삼대를 못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하절색 양귀비도 세월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었고, 영생불사를 꿈꾸었던 진시황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처럼 명확한 이치조차 애써 외면한 채 육신(肉身, 몸뚱이)에 집착하고, 재색(財色)과 명예(名譽)에 집착하며 한 세월을 보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육신이라는 빈 껍데기를 진짜 주인인 줄 착각하며 온갖 호강을 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진짜 주인인 마음은 소홀히 하고 온갖 구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빈 껍데기인 육신의 실체를 알기에 거기에 속지 않고, 본래 주인인 마음을 살찌우고 건강케 하는데 주저치 않는 것입니다.

마음은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단지 지은 업(業)에 의지해서 갖가지 형상의 옷을 형편에 따라서 입을 뿐입니다. 바꿔 입는 옷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을 바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오고 감에 매이지 않으며, 진정 인생을 보람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듯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의 연기(緣起)속에서 인간의 세월이란 그저 ‘마음으로 느끼는 찰나의 빛’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빛인 세월’을 어둡게 하는 것이 무명(無明, 번뇌)이요, 밝게 비추는 것이 광명(光明, 지혜)이니, 우리가 추구하는 깨달음이란 곧 세월의 굴레인 윤회(輪廻)에서 벗어나는 해탈(解脫)인 것입니다.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로다”라고 하신 백장선사의 말씀처럼 새해에는 불자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일 마다 항상 기쁨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하면서, 일상 속에서 마음 닦는 수행의 기쁨을 노래한 무문선사의 선시(禪詩)를 소개하는 것으로 경인년(庚寅年) 새해인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봄에는 꽃 피고 가을에는 달 밝고, 여름에는 바람 불고 겨울에는 눈 내리니,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언제나 한결같이 좋은 시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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