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  정 산 총무원장

불자 여러분! 이제 날씨가 꽤 추워졌습니다. TV에서는 전국 스키장이 개장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겨울을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불자 여러분들도 이번 겨울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불자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들과 뇌사 문제에 대해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혹 여러분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인간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는 순간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얼마 전 모 대학병원에서 몇 년 동안 뇌사 상태였던 환자의 가족이 호흡기를 떼자고 하였지만 병원의 거부로 생명을 이어가다 법원 소송으로 이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뒤 “호흡기를 떼는 것이 맞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호흡기를 제거한 뒤에 이 환자가 차차 의식을 되찾아 몇 달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뇌사 23년 만에 소생한 벨기에 남성 이야기가 전한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전한 외신에 따르면 이렇게 소생하여 컴퓨터로 의사소통을 하게 된 40대 후반의 이 환자는 “뇌사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듣고 느끼고 생각도 많이 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불자 여러분! 말이 그렇지 23년 동안 뇌사 상태에 있다가 다시 살아나 의사소통을 한다는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 환자는 1983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뇌사 판정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아무 반응도 없는 병상의 아들을 매일 찾아와 ‘대화’를 하며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온몸이 마비되고 의식조차 없었기 때문에 울 수도 없었답니다.

벨기에에서는 뇌사자의 안락사가 허용되지만 가족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뇌(腦)신경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해 뇌를 검사하여 “환자는 뇌사가 아니며, 의식이 있는데 몸이 마비돼 반응할 수 없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뒤 전문가들이 컴퓨터로 의사소통 도구를 만들어주었고, 이제 이 환자는 언론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부처님께서 라자가하[王舍城] 죽림정사에 계실 때 어느 제자와 사리불 존자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존자여, 존자께서는 늙음과 죽음을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기가 만든 것입니까? 남이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 원인도 없이 만들어진 것입니까?”
“벗이여, 내 생각으로는 늙음과 죽음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또 원인 없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다만 태어남을 인연하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늙음과 죽음이 일어나는 정신과 육체는 누가 만든 것입니까? 자기가 만든 것입니까? 남이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 원인도 없이 만들어진 것입니까?”
……
“그러면 의식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그것은 정신과 육체를 인연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사리불 존자여, 조금 전에 ‘정신과 육체는 의식을 인연하여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식이 정신과 육체를 인연하여 생긴다’고 하시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벗이여, 여기 갈대 세 대가 있다고 합시다. 이 갈대가 땅에 서 있으려면 서로서로 의지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가 없어도 나머지 둘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고, 둘이 없어서도 또 다른 하나가 제대로 서지 못합니다. 의식이 정신과 육체를 의지하는 것이나, 정신과 육체가 의식을 의지하는 것도 이와 똑같습니다.” (《잡아함》〈노경(蘆經)〉)

불자 여러분! 육체와 정신·의식은 서로 의지하고 있어서 하나가 모자라면 다른 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며, 마찬가지로 다른 둘이 제대로 살아 있으면 나머지 하나도 그에 의지해 버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뇌가 활동을 정지했다고 해서 섣불리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선 것으로 단정하고 한 사람을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3년 동안 뇌사 상태에 있다가 살아난 벨기에 사람의 경우, “사망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료진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돌보았던 가족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있어서 육체와 정신·의식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족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따뜻함으로 온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불자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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